요즘 주말에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빼놓지 않고 본다. 시청률 10%대 드라마도 나오기 힘든 요즘 21%를 넘긴 화제작이다. 재벌인 순양그룹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송중기 분)가 재벌가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사는 드라마다.
이야기의 중심축인 순양그룹은 삼성을, 라이벌로 나오는 대영그룹은 현대를 각각 연상케 한다. 순양그룹 진양철(이성민 분) 회장이 장자 승계 원칙을 철회하면서 더욱 박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진도준의 활약도 눈에 띄지만 진 회장의 외동딸이자 순양백화점의 대표 진화영(김신록 분)에 더 눈길이 갔다. 승계구도에 밀려나 있는 그가 “‘고명딸’ 아닌 ‘메인디시(주요리)’가 되겠다”고 진 회장에게 대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이다.
지난 주 삼성전자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오너가 출신이 아닌 첫 여성 사장이 나와 이목이 집중됐다.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 센터장이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는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로, 2007년 삼성에 입사해 갤럭시 마케팅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LG그룹도 지난달 5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사장을 배출했다. LG생활건강 이정애 사장이 주인공이다. SK그룹에서도 창사 이래 첫 여성 CEO가 탄생했다. 안정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온라인 쇼핑몰 11번가 CEO로 낙점된 것이다.
한국 대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그룹, SK그룹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장이 나와 화제가 되는 현실은 아직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이 얼마나 두꺼운지 반증하는 사례다. 이번 인사 전까지 5대 그룹에서 여성 사장은 없었다. 오너가 사장은 예외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다고 하나 국내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중이 5.6%에 불과하다. 부산 본사 대기업으론 르노코리아(옛 르노삼성)의 황은영 커뮤니케이션 본부장(부사장)이 10년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도다. 그가 2012년 르노삼성에 합류했을 당시엔 자동차업계에 여성 홍보임원이 거의 없었다. 구조조정 등 정리해고와 내수 시장 위기 등에도 강한 의지와 친화력을 무기로 제품 홍보에 앞장 선 인물이다. 해운업계에선 여성 최초로 임원이 된 정연심 장금상선 부산사무소장이 손꼽히는 정도다.
여성 임원들이 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딸들’에겐 유리천장이 두껍다. 대학까지는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사회에 나서면 남녀차별을 경험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여성 고용률(51.2%)은 남성 고용률(70%)보다 낮다. 입사 후에는 승진에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임금 차별을 받기도 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4일 발표한 ‘2021년 기준 OECD 국가들의 성별 임금 격차’ 조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OECD 39개국 중 가장 컸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26년 째 한번도 깨지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일부에선 남녀가 주로 종사하는 직무가 달라 임금 차이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주장하나 우리나라는 직무, 직종, 사업장이 같은 남녀 간의 임금 격차도 주요국 중 최상위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5급 행정직 공무원 합격률은 40%대, 외교관 후보자 합격률은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결혼 후엔 임신과 출산,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겪기도 한다. 출산으로 직장을 떠나면 원래 다니던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단기직이나 저임금 직종으로 다시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와 연계된 현상이다. 경력단절을 걱정하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로 남녀 2명 기준 출산이 0.8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61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성별 임금 격차를 없애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26년 6월부터 상장기업들의 여성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 비율을 각각 33% 이상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민간 부문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정책이다. 여성 인재 도입으로 기업 성장과 혁신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아 도입됐다고 한다. 여성 임원 비율이 낮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여전하나 정부는 여성가족부 해체에 골몰하고 있다. 물론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한 정부 부처가 돼선 안된다. 양성 평등과 가족을 포함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