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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관조하는 즐거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2-04 19:37:3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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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산성당 옆 커피명가는 창밖 경치로 명가였다. 전면을 채운 창 앞으로 색색깔 의자가 놓였지만, 조망을 위해 그 자리는 비워둔다. 가을 해가 환하게 들이치는 창으로 성당 마당 곱게 물든 벚나무 네 그루가 풍경화로 안긴다. 간혹 신자들이 오가고, 해는 시시로 창 안팎 조명을 바꾼다. 혼배성사를 마친 신혼부부가 풍경화 화폭으로 들어서자 빛을 발하던 단풍도 들러리가 된다.

행복은 최고의 ‘좋음’ 상태라던가. 소크라테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좋음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좋음이란 게 더 바랄 것 없는 내적 외적 상태를 이름이 아닐는지. 심적 욕구를 채웠을 때, 가장 안전하고 충만한 상태나 다른 무엇이 부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최상의 여건…. 그때 가을이 지나는 창밖을 관조하며 비슷한 행복감에 취했다.

대부분 들녘에서 보낸 유년의 가을 이후 무수한 가을이 지나갔다. 잠시 들렀다 가는 길손 같던 가을이 찰나의 프레임으로 눈의 창에 들어온다. 적색 황색 갈색톤이 가장 고운 단풍 시기를 만나기란, 행복을 위해서는 다소의 행운과 운수도 따라줘야 한다는 철학자의 말처럼 행운이 따라야 함을 실감한다. 모든 행위의 목적이 ‘좋음’이란 것도 가을이 일러준다.

이런 심적 충만감은 경제 사정과 반드시 직결하지는 않는다. 백화점에서 결제할 카드를 쉬 꺼내지 못하는 여건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조건에서는 행복감으로 전율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관조하는 즐거움이다. 신체 움직임이 둔해질수록 관조의 여유를 누리고픈 성향이 짙다. 소크라테스의 관조적 삶과 일치한다고 나름 해석한다. 사유하는 삶으로 참된 행복에 이른다는 철학자의 참뜻과는 거리가 있겠다. 그러나 독자가 자신과 연계해 받아들이는 해석은 저마다 다를 터. 영화를 보듯 눈앞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관조함도 사유하는 삶에 속하지 않겠는지.

행위로 성취할 수 있는 좋음 중 하나가 여행이 아닌가 싶다. 기원전 사람인 소크라테스가 요즘 생활상까지 내다보았음인가. 사람들이 여가를 갖기 위해 여가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고, 그때 이미 간파한 모양이다. 그간 해온 여행을 돌아보면, 어렵사리 여가 내어 여행 가서는 여유라곤 없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세의 성당이나 역사가 켜켜이 재인 유적지에서조차 사진찍기에만 몰입했다.

관조가 빠졌다. 여행자답지 않게 서둘러 움직이는 우리네와 달리, 유럽인은 느긋하다. 아무 계단에나 앉아서 그곳을 느끼고, 누리고, 관조한다.

동대구역에서 탄 기차가 경산 청도를 지나 밀양역에 정차할 때다. 앞사람이 내린 빈자리가 새 사람으로 채워진다. 저이는 내린 이가 남긴 온기를 느끼겠지. 이 또한 대상을 바라봄의 결과다. 기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두어 좌석 앞에서 한 소년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든다. 기울인 몸짓에 서운한 감정이 묻었다. 손끝을 따라간 창밖엔 할머니일 법한 한 여자가 소년에게 손을 흔든다. 서로를 보는 표정이 애틋하다. 기차 창을 사이에 두고 눈짓과 손짓으로, 잘 가라고 잘 계시라고 작별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다. 카메라도 없고, 영화감독도 없다. 주인공은 홀로 기차를 타고 세상으로 떠나는 아이며, 배경은 가을 기차역이다. 실제 영화배우보다 실감 난 연기를 한 소년은 가족 품으로 잘 돌아갔을까.

다양한 삶의 장면이나 상황을 지긋이 관조하게 된다. 별의별 일이 생기고 맞닥뜨리는 세상, 그 어떤 상황도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이태원 참사 같은, 내 아이와 이웃의 아들딸이 겪었을 수도 있는 일 앞에서 무심할 수 없다.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동조하게 되는 것도 관조하는 삶의 결과이리라. 아플 때는 건강을 행복이라 하고, 가난할 때는 부유한 것을 행복이라 하고, 때마다 행복은 저울질당한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한치 틀림이 없다.

절정의 가을 풍취를 충만하게 누린 여운인가. 어느 날 신호등에 걸린 빨강 주홍 불빛이 단풍으로 보였다.

김나현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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