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타계한 일본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고양이 빌딩’ 주인으로도 국내에 알려졌다. 도쿄 주택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서재는 좁고 길쭉한 모양인데 정면에 커다란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어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엄청난 다독가이자 애서가인 그가 평생 모은 수십만권 책과 독특한 외관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다치바나의 누이동생이 생전 유언에 따라 5만권을 이미 헌책방에 기부했고 나머지도 대부분 폐기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남긴 책과 고양이 빌딩의 운명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놀란다고 한다. 말을 타거나 칼을 차고있는 군주는 봤어도 책을 펼쳐 든 왕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서양인들이 우리 서민 삶에서 감탄한 것 중 하나가 집안에 있는 책이다. 끼니를 제대로 못 잇고 잘 씻지도 못하는 열악한 형편인데도 집집마다 서책 몇권씩은 갖고 있어서다. 어두운 방에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는 선비 모습을 프랑스 장교 한 사람이 삽화에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기념비적인 건물 하나가 세워졌다. 헌책방 3곳이 영업 중이던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아테네학당’이라는 곳이다. 책장에 책 다섯권을 나란히 세워놓은 디자인인데 라파엘로가 그린 명화와 이름이 같다. 건물이 묘사하는 건 이 그림 속 철학자들이 각자 손에 들고 읽는 책이다. 하나는 이데아의 개념을 설명하려는 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이 옆구리에 낀 ‘티마이오스’, 다른 하나는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편 아리스토텔레스가 허벅지에 받치고 있는 ‘윤리학’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철거 후 오피스텔로 재건축될 예정이었으나 뜻 있는 시민, 상인의 설득과 건축주의 결단 덕분에 헌책방으로 살아남았다. 원래 있던 책방 3곳은 1층에 재입주하고 나머지 3개 층은 문화공간 카페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 사람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아무리 보존운동을 벌이고 활성화를 추진해도 번번히 사라질 위기라는 소식이 날아든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뭉치니 자본 논리를 뛰어넘는다. 골목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곳곳에 있지만 정체성을 응축한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생겼다. 마침 도로가에 있어 눈에도 잘 띈다. 모자람 없는 부산의 자랑거리가 될 것 같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