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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마음을 따라가다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20 19:38:3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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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이면 부산 남산동 요산문학관에서 ‘요산문학축전’이 열린다.

축전 개막식이 있는 날에는 백일장도 함께 진행된다. 글쓰기를 비교적 늦게 시작한 나는 백일장에 모인 사람, 특히 청소년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시제가 발표되고 세 시간 안에 글 한 편을 뚝딱 만들어서 제출할 수 있다니.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백일장을 치르고 곧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한 고등학생의 이동 규모에는 혀까지 내둘렀다. 그대들은 진정 능력자군요.

개막식이 끝나고 시상식 시간이 되었다. 중등부 산문 장원을 발표하자 자신의 이름을 들은 학생이 시상식장으로 나갔다. 개막식 내내 ‘멘탈 나간’ 표정으로 돗자리에 누워있던 이였다. 학생은 백일장 첫 참가인데 주최 측에서 빵이랑 음료수를 줘서 맛있게 먹느라 삼십 분을 허비하고 결국, 글을 급하게 써서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냈단다. 스스로 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생각하고 수상을 포기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름을 불러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학생은 소감을 말하다가 엉엉, 소리까지 내서 울었다. 미안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어떤 절절한 마음은 청중을 웃게도 만든다. 오직 한 사람만 편히 웃지 못했는데 휴대전화로 수상 영상을 찍던, 학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의 마음들을 머리 위로 풍선처럼 띄운다면 저 여성의 마음만 다른 빛깔로 크게 반짝이겠구나 싶었다. 남의 마음을 따라가다가 내 마음까지 이렇게 뭉클해질 일인가.

올해에는 글을 쓰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수필과 소설 등 여러 산문 쓰기 수업을 진행했고 수업을 통해 많은 참가자가 글을 쓰고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일은 그가 글자로 제시하는 문장 힌트를 통해 쓴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 보는 일인 것 같다. 그 마음을 따라가는 방식은 읽는 사람마다 또 달라서 헤아린 마음 크기나 빛깔이 다를 것이고.

작가의 마음을 풍선이라고 상상해보자. 작가가 쓴 글에는 분명 일정 크기와 모양과 색을 지닌 마음-풍선이 들어있을 것이다. 수업에 모인 우리는 둥글게 모여 앉아서 한 참가자가 제출한 글을 소리 내 읽는다. 읽으며 참가자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때 우리 머리 위에는 어떤 색과 크기를 지닌 마음-풍선이 뜰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질감 형태 향기를 지니지 않을까? 글 읽는 지구인 머리 위에 뜨는 마음-풍선을 상상해본다. 어떻게든 작가의 마음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수십 수만 수십억 개의 마음-풍선들! 이 마음-풍선을 ‘공감’이라고 불러도 될까.

한 참가자가 쓴 짧은 소설 속 주인공은 열여덟, 이른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엄마가 없어도 삶은 살아야 했고, 현재 주인공은 결혼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주인공은 호숫가 산책을 하다가 한 아주머니를 만난다. 아주머니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곧 헤어진다. 사실 이 아주머니는 주인공이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엄마였다. 수업에 참여한 우리는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서라도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난 주인공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실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렸다. 우리는 글쓴이에게 지금이라도 엄마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전부 말하고 듣게 해보라고 권했다. 그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가 그와 겹쳐 보여 울컥했다. 그때 우리 머리 위에 뜬 마음-풍선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그게 좀 밝은 계열이었으면 좋겠는데.

백일장이 끝나고 일주일 뒤, 이태원에서 믿지 못할 참사가 일어났다. 빠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 이렇게 썼지만, 어떤 문장으로도 희생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대신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마음을 따라가 보려는 시도를 거듭하는 이가 세상에 많이 있다고 전하고 싶다. 한가지 방식, 한가지 색상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빛깔의 마음으로 함께 추모하고 있다고.

이정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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