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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사람과 기계의 더 나은 공존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14 19:50:5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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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판정을 받은 서른 살 아들과 늙은 아버지가 한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달라고 한다. 죽은 아내가 좋아하던 영화를 보려는 것이다. 아들은 평소처럼 테이프를 틀어주다 아버지에게 한마디 한다. “아버지가 한번 해 보세요”. 아들은 열심히 설명하지만, 아버지는 서툴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들은 사용법을 종이에 적기 시작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장면이다.

1998년 영화니 그때는 전자기기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밖에서 만나는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라고 주문할 수 없는 곳이 많다. 키오스크에서 간신히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고 하더라도 기계의 공격은 그때부터다. 먹고 갈지, 샷을 추가할지, 사이즈를 키울지, 적립을 원하는지, 영수증은 필요한지…. 신중해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찬찬히 신용카드 입구를 찾아 계산까지 끝내고 나면 땀이 삐질 흐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들리던 인사말을 이제는 듣기 힘들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나를 맞는다. 예전에는 인사와 함께 이것저것 물어보던 직원의 과한 환대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띡, 띡’ 하는 터치음만 들린다. 기계를 무서워(!)하는 한 사람으로 나는 여전히 이 키오스크가 낯설다. 내 앞사람의 주문을 보며 미리 학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뒷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 원하는 대로 안돼 얼굴이 차츰 달아오르고 무능해지는 내가 싫어서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을 앞세운다.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노력하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내가 살던 시대를 나름대로 인정해 달라는 외침일까. 그때 그 시절도 ‘최첨단 시대’였다고 몸부림쳐 본다.

사람이 했다면 ‘끔찍하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일을 기계가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정부와 기업은 사람이 했다면 명백한 차별이라고 부를 만한 행위를 기계가 은근슬쩍 하게 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기계와 같은 인공물을 통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니 ‘인공 차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무인 시스템은 종종 인공 차별의 현장이 된다. 휠체어를 타고 패스트푸드 점포에 들어온 사람에게 점장이 “이유를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는 당신에게는 햄버거를 팔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차별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가맹점마다 들어서고 있는 키오스크는 스스럼없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당신에게 햄버거를 팔지 않겠다”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는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점원 중 누군가가 주문을 도와주러 나오지 않는다면, 주문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무인 기계가 점장과 경영자를 대신하여 휠체어에 탄 사람을 은근슬쩍 내쫓는 것이다. 사람끼리 얼굴을 보고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이다.

정부는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든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고령 사회로 규정되었고, 나이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경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꼭 경제 활동이 아니어도 우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를 각자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기계를 다루지 못해서 뭔가를 포기하는 일이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무인화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함께’가 빠져있다는 것이 아쉽다. 누군가가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친절한 직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상식이다. 기술의 발전도 사람이 함께해야 품격이 있다. 사람이 없는 기술의 발전은 누군가를 사회와 격리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키오스크를 설치하지 않았느냐고, 직원을 배치할 것이라면 키오스크를 왜 설치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다. 나도 묻겠다.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냐.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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