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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희생양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보내는 염소 뜻하는 희생양, 이스라엘 종교 제의와 관련…오늘날 통제 위한 목적 악용

사회 구성원 분란 몰아넣어…책임 있는 지도자 신념 필요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09 19:20:5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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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빼앗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복잡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판세를 뒤집는 전략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희생당하는 사람은 억울하겠지만, 전략을 꼼꼼히 잘 짜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심심치 않게 신문에서 이 전략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놓아 보내는 염소’에서 나온 말이고(영어로 scapegoat)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제의와 관련이 있다. 히브리 성서에 보면 매년 지켜야 할 명절들이 나오는데, 가을이 되면 금식하면서 죄를 고백하는 ‘속죄일’을 지킨다(레위기 16장). 이때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숫염소 두 마리를 가져오는데,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성전에서 잡아 제단 위에서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돌아가도록 놓아 보낸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 제의를 위해 드리는 제물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을 대신해서 도살당하기 때문에 대신 희생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속죄일 염소 중 놓아 보내는 염소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나라 백성 전체의 죄를 대신 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들로 내보낸다는 상징성 때문에 더 주목을 받는 것이다. 이런 관습이 어디서 유래했고 어떻게 고대 이스라엘 종교체제 안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에서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권위 있는 관습이었을 것이다. 염소는 양에 비해 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이 있는데 이런 염소를 광야로 놓아 보내는 행위는 인간의 문명 바깥에 존재하는 시원적인 자연으로 돌아감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 성서 본문에는 놓아 보내는 염소가 ‘아자젤’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나오는데(레위기 16:8),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 낱말은 인간세계를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가 이 아자젤의 영향권에 속한다고 판단하여 그 죄의 주인에게 죗값도 돌려보내는 행위를 제의로 형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일 년 동안 인간의 문명세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바깥 세계의 영향력을 제거하여 두 영역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일신관이 점차 확립되면서 이런 종교적인 전제는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 야훼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으로 간주되면서 도시 바깥 광야에 다른 신존재가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대 랍비들은 놓아 보내는 염소를 데리고 광야로 간 자가 줄로 뿔을 묶어 바위에 고정한 뒤 절벽에서 뒤로 밀어 떨어뜨려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미쉬나, 요마 6, 6). 히브리 성서에 놓아 보내는 염소는 분명히 살려 보내야 한다고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제의의 모든 부분을 공식적인 신학에 따라 철저하게 검열하고 아무런 흠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체제를 세우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은 그의 백성들의 삶 구석구석을 완벽하게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놓아 보내는 염소가 살아남을지 희생양이 되어 죽을지는 어느 전통을 따르느냐에 달려 있지만 이런 선택을 하는 자들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와 지배권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희생양 전략이 성공하는지 여부가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같은 문제를 또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희생양 전략이 성공하여 지목한 개인이나 단체가 제거되면 사회는 그 전략을 짠 측의 의도에 따라 기존 질서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나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만족감을 맛본다. 르네 지라르는 이 심리적인 만족감이 희생양 역학관계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만족감 때문에 그 사회는 다음 희생양을 찾는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이 실패할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전략의 틀 자체가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회복할 수 없는 분란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므로 이 전략을 시작한 뒤 중간에 멈출 수는 없고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것을 잃게 될 게임을 계속할 뿐이다. 이 사회가 염소들이 지배하는 광야가 아니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때다.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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