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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당신의 유통기한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25 19:09:2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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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산다. 되도록 진열대 저 안쪽에 있는 우유를 꺼낸다. 유통기한이 짧은 순서대로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야 장바구니에 담는다. 우유뿐만 아니다. 가공식품을 살 때 반드시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 있어야 신선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며칠 전에 바뀌었다. 김 시인의 시조집을 받고부터다. 지인이 전하는 김 시인의 배려 깊은 행동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김 시인은 식품을 살 때 오늘 소비할 것이라면 유통기한이 최대한 짧은 것을 산다고 한다. 오늘 소비할 것인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지구를 지키는 차원에서도 굳이 그리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글은 사람이다’고 했다. 김 시인의 시조집은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언제 소비할 것이라는 계획이 있으면서도, 유통기한이 꼭 소비기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신선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유통기한이 긴 것을 사는데…. 금방 먹을 요구르트 한 병도 유통기한을 따져가며 사는 나는 제법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자라고 자부했는데…. 나만을 생각한 행동이 부끄럽다.

“유통기한/사용기한/한참이나 남았는데//뒤에 선 것/밑에 앉은 것/굳이 밝히는 왕 소비자//지구도 지갑도 아프다는데/새것만 좇은 헌 생각”(구금자의 시조 ‘새 신과 헌신獻身’ 둘째 수)

유통기한은 단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다. 식품에 표기된 보관 방법을 준수할 경우 먹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인 소비기한과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식품이 폐기 처분되면서 많은 쓰레기와 탄소가 배출된다. 지구가 아파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이며 그 처리 비용은 매년 1조 96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OECD 대부분 국가들은 식량 낭비를 줄이고 정확한 소비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추세이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도 소비기한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3년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한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했다. 판매자 중심 표기에서 소비자 중심 표기로 바뀌는 것이다.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믿는다.

경기침체로 요즈음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싸게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소비자 인식과 소비문화가 변하고 있다.

우유를 살 때 내 행동이 변했다. 소비할 기간을 생각해서 유통기한을 선택한다. 가방에 천 바구니도 넣고 다닌다. 사무실에서도 종이컵 대신 개인 컵을 사용한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니 아직 멀었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아직도 많은 양의 일회용품을 쓴다. 시금치나물을 무치면서 비닐장갑을, 식탁을 닦으면서 물휴지를, 접시의 물기를 닦으면서 부엌용 휴지를 쓴다. 된장찌개에 넣고 남은 호박 반 토막을 일회용 비닐에 담는다.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일회용 비닐 제품과 휴지들의 유통기한은 내게 무한한 것인가? 아니다. 그들의 사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작은 실천으로 하나뿐인 지구의 유통기한을 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썼던 많은 글은 유통기한도 소비기한도 지난 느낌이다. 지금 읽어 보니 소재도 진부하고 감동도 없다. 그렇다고 주제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다. 고전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글이다. 고전은 유통기한도 소비기한도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살아 있는 글이다. 문인들은 유통기한도 소비기한도 없는, 영원히 남을 한 편의 글을 위해 오늘도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한다. 나도 유통기한이 영원한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로서의 유통기한을 더 늘이는 길이 아닐까? 현재 당신의 유통기한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당신은 어떤 유통기한을 늘이고 싶은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길어진다.

정희경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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