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를 연구하는 이론 중에 하인리히법칙이라고 있다. 사고가 하나 생길 때는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번이 있었고, 같은 원인으로 사소한 사건이 300번이 있었다는 1:29:300의 법칙이다. 대형 참극에 앞서 사소한 일이라도 허튼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북한의 점점 잦아지는 무력도발을 보노라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국제사회와 우리가 탄탄한 동맹방어체계를 가동 중이지만, 러시아의 무도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행되는 이 시점에서, 또 중국이 대만을 놓고 무력사용 의도를 남발하는 가운데에서, 북한이 아주 빈번하게 원거리 무기실험을 하는 것이 만에 하나 전쟁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크다.
이런 우려는 장차 국제적인 경제활동의 방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여파로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무형보다는 유형이, 감성보다는 이성이 경제적 동기에 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처리의 힘을 전 방위적으로 활용하는 산업혁명의 기운이 뚜렷하지만, 질병과 전쟁은 단박에 우리에게 재래식 소재와 재래식 물건의 존재감을 소환시키고 있다. 게다가 안전한 교역과 교류의 경로 역시 국제관계의 기반을 서로 공고히 다져야만 가능할 수 있게 급변하고 있다.
부산 울산 경남은 지역연합체로 변모를 시도했다. 도시연합의 현상으로도 보였다. 산업화가 쇠락한 영국도 내부에서 지역마다 도시연합의 기운이 강력하다.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맨체스터시 주변의 군소 산업도시들도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광역도시를 만들었다. 이제까지의 시류는 사람들이 자유와 여유를 희구하며 혼숙하고, 혼밥하고, 혼거하는 트렌드가 미래세대의 혁신문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 청년들이 갑자기 전쟁터로 징집이 되고, 미국이 중요한 기술과 공장을 자국으로 황급히 모으는 일들을 보면, 젊은이들의 소프트하고 노마드한 꿈은 오래갈 수가 없다.
누구나 어딘가로 소속되고, 보호받고, 정주하고, 내부화해야 산다는 깨달음이 소리 없이 찾아온다. 혼자 감성에 젖고, 누군가와 좋은 느낌을 나누고, 연한 부드러움에 취하여 살면 이런 역사의 역진을 잘 알아차릴 수가 없다. 겨우 코로나를 벗어나려나 했더니, 생때 같은 전쟁이 오고, 또 이렇게 그 뒤로 실루엣으로 보이는 세상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게 비쳐진다.
봉건주의는 왕가나 지주만이 하는 게 아니다. 지식도 모이고, 돈도 모이고, 규율도 모이고, 가치관도 모이면 중심부가 조성되고 그 외연으로 봉건의 체제는 가동할 수 있다. 미국이 돌연 그런 기조로 국제관계의 새로운 용례를 툭 던지는 중이다. 미국에 물건을 팔려면 미국으로 생산하러 오라는 말이나, 오더라도 미국과 친한 나라만 오라는 프렌들리 쇼어링(friendly shoring)이란 말이 그렇다. 소위 친미동맹의 안보경제 통합의 아젠다를 던지는 형국이다. 또 영국 정부의 갈지자 마이웨이를 보고 그 결말을 보라.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도 당면한 경제정책을 제 마음대로 선택한다. 이 또한 현대판 국가 봉건화의 신호탄이다.
이런 판국에 미래 한국의 선택은 오롯이 우리 국가와 국민의 몫이다. 결연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고, 단합과 협동의 정신을 길러야 할 상황이다.
부울경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단합하고 협동하고 같은 꿈을 키워야 한다. 올해 지방선거는 그런 일을 하라고 뽑은 정치인들의 경연장이었고, 그들 앞에 닥치는 행정과 정무의 숙제는 이렇게 매일 새로워지고 치열해진다. 더 많은 정책수단과 전문 인력을 가진 중앙정부에 연일 휘몰아치고 들이닥치는 저 간단치 않은 난관과 역경을 보라.
이렇게 점점 국가나 지방정부가 맞이하는 상황은 조변석개의 안갯속이고, 대명천지에도 날벼락의 연속이다. 이젠 정말이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책임 있는 일을 하는 자리에는 제발 아무나 제멋대로 나서지 않아야 하겠다. 부디 자신을 좀 돌아보고 나랏일에 나오라.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