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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노포의 가치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19 19:42:2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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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노포에서 자주 회식을 한다. 회식하던 어느 날, “노포가 뭔지 아세요?”라는 질문에, 젊은 직원 한 사람이 “가건물인가요?”라고 반문했고, 또 다른 젊은 직원은 “노상점포의 줄임말인가요?”라고 했다. 모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노포(老鋪)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말한다. 대대로 물려 내려왔다는 점에서, 노포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점포라는 걸 알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100년 이상 된 노포가 그리 많진 않다. 그 원인을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급속한 산업화·도시화·현대화에서 찾는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것 역시 우리의 과거이니까.

한편 최근 노포의 인기는 MZ세대에게도 꽤 있는 듯하다. 서울의 을지로를 ‘힙지로’라고 부르며, 을지로 구석구석 오래된 노포를 찾아 인증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과거 단골손님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 자리를 뺏긴다는 살짝 과장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부산에도 노포는 많다. 55년 된 명성횟집, 52년 된 돌고래할매복집, 60년 된 물꽁식당, 60년 된 할매국밥, 57년 된 옛날그빵집 등을 들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부산 옆 동네 진주에 가면 육회비빔밥으로 62년을 이어온 제일식당, 75년 된 수복빵집 역시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조금 더 멀리 목포에는 민어로 53년을 이어온 영란횟집, 40년이 넘은 홍어삼합 덕인집, 70년 된 코롬방제과가 있다.

노포의 맛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슴슴함’이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슴슴하다’는 ‘심심하다’의 비표준어로 나와 있다. 하지만 언어의 속성에는 사회적 생성·발전·소멸이 내재돼 있기에, 노포를 자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는 ‘슴슴함’이란 단순히 싱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극적이지 않고 양념이 지나치지 않으며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 감칠맛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 노포의 맛은 자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 맛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운다. 사람들에게서 오랜 사랑을 받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하는 맛은 바로 한결같은 주인장의 마음과 땀,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맛에 있어선 가히 ‘거경궁리(居敬窮理)’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포의 가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다음으로, 노포에는 역사가 있다. 2대, 3대를 흐르는 시대와 삶의 굴곡에서 희로애락이 묻어 있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가치는 최근 낙후된 지역에 대한 다양한 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생으로 선회해 각 지자체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모처럼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인천 개항로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노포의 감성과 정취,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도시재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민간 주도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현장을 찾아가 배울 정도로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끝으로, 사람들이 노포를 왜 찾는지, 최근 들어 MZ세대까지 노포에 대한 관심을 왜 그렇게 갖는지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또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아마도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잊은, 또는 잃어버린 우리의 정신문화가 아닐까? 노포를 찾는 것은 그곳에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 내지 착각하는 정신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신문화는 다름 아닌 ‘신뢰(信賴)’다. 즉, 맛에 대한 신뢰다. 한결같음에 대한 신뢰다. 땀에 대한 신뢰다. 끈기에 대한 신뢰다. 삶에 대한 신뢰다. 역사에 대한 신뢰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잊은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그 신뢰를 꿋꿋이 이어오는 노포가 여기 있으니 말이다. 또한 그 신뢰는 분명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로 이미 선한 영향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노포의 가치는 바로 우리의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그리고 그 정신적 가치는 켜켜이 쌓아온 우리의 과거와 현재이자,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라는 것을!

송영신 법무법인 다빈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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