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올해 히트 댄스곡들의 평균 음원 길이가 대부분 2분대라고 한다. 10년 전 히트 댄스곡이 4분대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음원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짧은 콘텐츠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짧은 영상 콘텐츠가 올라오는 유튜브 쇼츠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지난 6월 전 세계 15억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거기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1.5배속으로 보는 게 국룰’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콘텐츠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그마저도 배속으로 보는 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1.5배속의 세상은 현실의 세상과 사뭇 다르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말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고, 그만큼 시간도 빨리 흘러간다. 5분짜리 영상은 3.3분 만에 끝나고, 10분짜리 영상은 6.6분 만에 끝난다. 영상 한 편을 보는 시간을 아끼긴 했지만, 곧장 알고리즘이 다음 영상을 시청하라고 유혹한다. 대부분 길지 않은 영상이다. 10분이 넘는 영상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1.5배속으로 보면 10분짜리 영상도 7분도 안 되어 끝나지만, 왠지 두 자리 숫자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15분, 20분짜리 영상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간혹 1시간짜리 영상도 있지만, 이마저도 드라마 시리즈의 요약본이다.
우리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과 10분짜리 영화 요약 영상을 보는 게 같지 않다는 걸 분명 알고 있다. 후자의 경우 시간은 아꼈을지 몰라도 한 편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감동은 효율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감동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1.5배속으로 듣지 않는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그와 어울리는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질 때, 우리는 효율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음악에 빠져든다.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은, 넓은 전시장 속 한 작품 앞에서 멈춘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차에서 내려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주위 풍경을 둘러본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 속 1.5배속 세상이 아닌, 현실의 1배속 세상과 마주한다.
요약 영상을 보기보단 직접 영화관에 들러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제 속도로 감상한 적이 있다면, 전시장을 둘러보다 잠깐 발걸음이 멈춘 적이 있다면, 차에서 내려 산책을 한 적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 빠르게만 소비하다 보면 놓치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세상은 1.5배속으로 재생할 수 없으며, 때때로는 본연의 것 그대로, 원래의 속도에 맞춰 마주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책은 모든 걸 그저 빠르게만 소비하려는 시대적 욕구를 거스르는 매체다. 책은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노력, 에너지를 요구한다. 모든 걸 요약하고 그것마저 1.5배속으로 보는 시대에, 음악마저 3분을 넘기지 않는 시대에, 책은 지나칠 만큼 따분하고 우리의 시간을 놀라울 만큼 잡아먹는다. 지금 시대에 책은 분명, 우리를 무척 불편하게 하는 매체이다.
다르게 말하면, 책은 우리가 콘텐츠를 꼭꼭 씹어먹을 수 있게 만드는 몇 안 남은 매체다. 언제나 그렇듯 쉽게 얻은 건 쉽게 잃기 마련이며, 우리가 콘텐츠를 보고 얻을 수 있는 감동과 배움의 폭은 효율이 아닌 절대적인 시간이 결정할 것이다. 편하고 빠른 것이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거기에만 중독되면 우리는 생각에 잠기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법을 점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그 감각을 이미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부터 무언가에 쫓기듯 이렇게 빠르게만 소비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천천히 소비한다는 건, 삶의 어느 순간에는 분명 경험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삶에서 멀어진, 그런 그리운 감각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빠르게 해치우듯 소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두툼한 종이 뭉치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해준다.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 속 1.5배속의 세상에서 내려와, 흰 종이와 검은색 잉크가 만들어내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몸을 맡겨보자. 1배속의 진짜 세상,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느릴지도 모르는 세상이 우리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정오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