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은 576돌 한글날이었다. 지금까지 한글로 글쓰기를 하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시와 교육청이 힘을 합쳐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육성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부산시는 영어상용도시를 위해 ‘상용 공문서의 영어 병기’ ‘도로 표지판과 공공시설물 영문 표기화’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외국인학교 유치’ ‘권역별 글로벌 빌리지(영어마을) 등 거점교육센터 조성’ 등 추진 방안을 내놨다.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계획으로 보인다. 내세운 정책의 이름부터가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일반적으로 상용어와 공용어로 구분할 수 있다. 공용어는 말 그대로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며, 상용어는 일상생활에서 늘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상용어도 공용어도 한국어다. 한국어를 공용어와 상용어로 사용하는 부산시민을 일상생활에서 늘 영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추진하는 핵심은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준비하고 국제도시를 지향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시민이 영어만 잘한다고 세계박람회가 성공할 수 있고, 부산이 국제도시로 비약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계획이 아무리 시장의 선거공약이라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론화가 필요하다. 공론화를 통해 정교하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언어정책인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추진하는 것은 언어정책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도 없다는 말이다. 언어정책은 단순히 언어정책 자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언어정책의 변화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의 삶의 문화를 변화시키며, 문화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역사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변화를 추동한다. 언어는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나라나 지역의 언어정책은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와 비전문가이지만 말살이의 주체인 시민이 함께 참여해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부산시 영어상용도시 계획은 무모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영어상용이란 개념을 정책으로 내세움으로써 상용어란 기본적인 이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다. 일반 시민에게 상용어는 한국어이지 영어가 결코 현실적으로 상용어가 될 수 없다. 영어 관련 전문가 몇 사람이 기획하고 행정이 밀어붙인,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정의 과격함이다.
시나 교육청은 부산시민이 영어 상용도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과 필요성을 의식하는지, 더더욱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사전 여론을 제대로 파악한 자료는 아무것도 제시한 것이 없다.
시가 영어상용화 정책을 발표된 이후 한글문화연대는 티엔오코리아에 의뢰해 지난달 24~27일 부산거주 시민 19~69세 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으로 영어상용도시 부산시 정책에 관한 시민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시민 40.9%가 반대했고, 찬성은 27.6%에 그쳤다. 특히 영어마을 글로벌빌리지를 다른 곳에 추가 설치하는 것에 관해서는 반대가 58.9%, 찬성이 25%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2004년도 경기도 안산에서 시작된 안산영어마을이 개원 첫해 118억 원 손실을 기록한 뒤 만성적자에 시달리다 2012년 문을 닫는 등 전국 수십 개의 영어마을이 많은 예산만 허비하고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부산에서 운영 중인 부산글로벌빌리지와 부산글로벌외국어교육센터(서부), 두 곳의 운영도 학생과 시민의 실질적인 영어교육 활성화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민 혈세를 잘못된 정책에 쓸 수는 없다. 오히려 시가 지금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언어정책은 전국 대도시 중에서 부산이 외국어 오남용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라는 오명을 씻는 일이다. 부산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양한 외국어가 남발될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 잘못된 영어 안내문, 간판이 한둘이 아니다.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 바이브, 갓생림픽, 센텀시티,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등 일일이 다 예거하기가 힘들다. 세종대왕이 살아나 부산을 한 번 돌아본다면, 이곳이 조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냐고 묻지 않을까?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