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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내가 불멍을 하는 이유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04 19:46:5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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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서 가끔 불멍을 할 때가 있다. 11월부터 4월 말까지는 산불 방지 기간이라 불을 피울 수 없고, 한여름에는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불을 피웠다가는 떠 죽을지 몰라 엄두를 내기 어렵다. 늦봄이나 요즘 같은 가을이 불멍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불멍을 하는 첫째 이유는 온갖 지저분한 것을 다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궁이는 깨끗한 것만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라도 다 받아준다. 축축하게 젖어있지만 않으면 처치하기 곤란한 잡초덤불이나 환삼덩굴 줄기, 낙엽 등,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다.

둘째는 수렵시대부터 이어온 불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 때문이다. 이상하게 불만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은 도시 주방에서 가스를 쓰지만 나무를 직접 태우는 방식은 너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놓고 앉아 있으면 온갖 잡다한 세상 시름을 다 잊을 수 있다.

셋째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다. 나뭇가지를 한 무더기 집어넣었어도 금방 타서 재가 되어버린다. 한 아름의 땔감이 재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불이 타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하루 시간이 사그라지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할 일 없이 어정거리다가는 귀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된다. 너울거리는 불길은 하고 싶은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뒤에 가서 후회할 거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넷째는 뜨거운 열정을 배울 수 있다. 차가운 불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얼마나 뜨거운지 장갑을 끼고 만져도 후끈한 열기가 전해진다. 땔감을 태우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기가 필요하리라. 세상 모든 일이 시시하고 아무런 의욕이 일어나지 않을 때 불 앞에 앉아보라. 그 뜨거운 열정에 한 번 감염이 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궁이 가득 집어넣은 나무를 다 태워버리는 활화산 같은 열정! 나는 불멍을 하며 그 열정을 배운다.

다섯째는 선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 남과 다투었거나 지나친 욕심을 부렸을 때 불 앞에 앉으면 슬그머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제 아무리 굵은 나무일망정 타고나면 한 줌 재로 변해 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발버둥 치며 살지만 죽고 나면 재밖에 남는 것이 없다. 적당히 만족할 줄 알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여섯째는 덤으로 무엇을 삶거나 찔 수 있다. 멍하니 불만 보고 있어도 좋은데 고등어를 굽거나 약초 닭백숙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요리 솜씨가 없는 사람이라도 가마솥에 닭과 약초를 집어넣고 푹 고면 훌륭한 보양식이 된다. 가스불로 요리한 음식보다 장작불이 훨씬 더 맛있다는 것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일곱째는 무소유의 진리를 깨닫는다. 도시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돈이 필요하지만 산장에서 불을 피울 때는 거의 공짜로 즐긴다. 나무는 산에서 삭정이를 주워오거나 가지치기한 부산물을 이용한다. 라이터로 솔가지에 한 번 불을 붙이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햇빛 바람 공기 비 등이 공짜이듯이 불도 마찬가지다.

진짜 중요한 것은 큰돈이 없어도 쉽게 누릴 수 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마음을 비우면 세상 사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여덟째는 사후 뒤처리의 중요성을 배웠다. 불은 피울 때보다 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불을 피워 놓고 잠깐 방심하면 큰불로 번질 수 있다. 반드시 잘 껐나 확인하고 불멍을 끝내야 한다. 촛불을 좋아하는 사람이 깜빡 하고 켜두었다가 화재로 이어진 사례가 많다. 나는 불멍을 할 때 반드시 물통을 두 개 이상 갖다 놓는다. 불티가 튈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한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불멍을 하지 않는다. 불멍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불장난이다. 아무 데서나 불장난을 했다간 큰일 난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김재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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