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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난장] 비속어 논란과 시뮬라시옹

국민 청각테스트 논쟁 확산…원본과 모사본 경계 모호

이성보다 이미지·기호 판쳐…소모전 탈피할 성숙함 필요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29 19:22:2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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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바이든’ 대통령을 지칭한 것이 맞느냐, ‘날리면’이 맞느냐로 물었다고도 한다. 전 국민이 청각 테스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이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카드를 들고나오자 국회 운영위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고성이 오가다 정회되는 일이 일어났다. 야당은 대한민국이 쌓아 올린 외교 성과가 모래성처럼 쓰러질 것이라고 비난하고, 여당은 위기 극복을 위해 협조해달라고 요청한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언론과의 전면전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대통령 비서실이 지난 26일 MBC 사장에게 공문을 보내고 국민의힘도 MBC를 상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형사고발 등 사실상 전면전을 예고한 바 있다.

대통령의 현장 발언 내용과 방송을 통해 전달된 녹음내용, 또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 다시 만들어진 녹음내용을 놓고 진실공방전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이 떠오른다.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와 걸프전쟁을 예로 들어 자신의 사상을 설명한다.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CNN의 걸프 전쟁 보도에 대해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CNN 보도에 나오는 전쟁 이미지는 실제 전쟁과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시청자들이 이를 진짜 전쟁인 것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과 언론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여기서 진실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이 파생되면서 원본과 모사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사실과 진실, 원본과 모사본의 괴리와 갈등은 기술적 발전으로 지금까지 가속화돼 왔고, 앞으로도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시뮬라시옹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호와 이미지가 원본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합리성과 이성보다 이미지와 기호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계속 제기되는 공공성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원본과 모사본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모사본은 진보 또는 보수 진영의 우산 아래에서 도덕적 면허(moral license)를 갖고 원본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과 행동을 하고 있다. 공공성의 공(公)은 여러 사람에게 관계되는 일을 가리키며, 사적(私的)인 것과는 반대 개념이다. 공(共)은 구성원과 함께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의 공공성을 외치는 일부 단체가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과 비리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구성원이 모두 동의한 대학 발전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행태와 가치는 공공성이 아님에도 기호와 프레임을 통해 공공성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원본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원본과 모사본의 괴리와 갈등은 파생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열역학 제2 법칙은 고립계(Isolated System)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 일어나며 감소하지 않는다고 한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기는 쉽지만, 무질서에서 질서로 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유리병을 깨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지만, 무질서 상태의 병 조각을 주어 원상 복구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와 논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질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불가역적 무질서로 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기호와 이미지에 압도되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과정을 통해 질서와 발전을 유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공사석에서 스스로를 더욱 경계해 말과 행동에 보다 품격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언론도 진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국익과의 관계 등에 대한 고민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치권은 일방적인 비호나 비방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논란을 마무리할 출구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에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상황에서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에 매몰돼 있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시청자(audience)인 국민도 이성과 합리성을 갖고 사물을 대하는 성숙함을 갖춰야 한다. 행위의 주체(sources), 매체(media), 시청자(audience)가 각각 예의와 지혜로움, 이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할 때다.

이동현 평택대 총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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