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원이 드는 세금 먹는 하마 입법을 민생입법이라 기만하고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이건 정치가 아니라 뒷골목 양아치들 같은 폭치” (야당이 내놓은 7대 민생법안에 대해). “윤 외교 참사, 천공 스승의 가르침 때문인가 김건희 여사가 걷기 싫다고 한 건가?” “상갓집에 가서 조문은 하지 않고 육개장만 먹고 온 격”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불발에 대해).
최근 정치 현안을 놓고 정치인이 내뱉은 언사들이다. 그것도 여야 의원의 발언들로 듣기 거북스럽다. 시정잡배나 쓸만한 언사를 명색이 선량이라고 하는 이들이 마구잡이로 쓰니 ‘막말 정치’란 지적이 전혀 이상스럽지 않다. 말은 한 사람의 생각과 사상의 반영이자 품성과 인격을 드러낸다. 그래서 자고로 말은 가려 하라 했고, 세 치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거나 살린다고도 했다. 이렇듯 말은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스레 쓰라고, 오랜 경험을 반영한 경구들이다.
특히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말이야말로 한 마디 한 마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차지한 무게감만큼 말이 주는 파장이 크기 때문일 터다. 한편으로는 지도자들의 말은 사회의 수준을 나타내기도 한다. 툭하면 너나없이 국격을 들먹이지만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그 잣대가 됨을 까맣게 모르는 듯하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의 말투가 뒷골목 건달들이 쓰는 말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말속에 숨긴 비열한 암수들로 오염의 정도가 더 심하다. 막말을 내뱉으면 속이 시원할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팬덤을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정치인의 막말이 무서운 것은 그들 자신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시민의 정서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항간의 언어도 거칠어진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처절한 경쟁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이어가는 민중의 삶이 말을 거칠게 만든다. 그에 더해 정치판의 막말 행렬이 시민의 언어를 오염시키고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와 관련한 시민의 발언은 정치인의 언사를 그대로 옮겨와 공격적이다. 차례상 앞에서 지지하는 정파를 둘러싼 입씨름으로 가족 간 우애가 깨어지는 것은 흔히 보는 명절 풍경이다.
정치인의 막말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말에 담긴 혐오와 분노, 적대감 때문이다. 평상의 언어로 의견을 내기보다 무례한 언사를 동원하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마저 보이는 정치인의 언사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탁하게 만든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든 지도자들은 당대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조정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마땅히 이성을 바탕으로 민심을 어루만지는 따듯함과 겸허함을 미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판 언어들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살기를 띠어가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선 해마다 정월보름이면 당제를 지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주민의 집단 기원행위였다. 당제를 주관하는 이를 유사라고 하는데, 주민이 번갈아 역할을 맡았다. 유사로 지명된 이는 행동거지나 말본새를 신중히 했다. 평소보다 말수를 줄이고 시비에 연루되지 않도록 언행을 정갈히 했다. 유사가 이렇게 삼가며 신독한 것은 왜일까. 한 해 동안 마을의 안녕과 번성을 위한 기도의 집전자로서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하물며 마을의 지도자가 그러할진대,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이 벌이는 행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장삼이사 서민의 생각이나 언행보다도 저질스럽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꼴이 어떨 땐 세 살 먹은 아이보다 어리석고 주먹질을 일삼는 건달보다 야만스럽다. 그래서 우리 정치 전반이 후진적이고 퇴행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망언을 뱉어내고도 부끄러움조차 모르니 정치판이 이전투구 판이라는 소릴 듣는 것 아닌가. 지난 수도권 물난리 때 수해 현장에 나온 여당 중진의원이 비가 좀 더 왔으면 사진이 될 텐데 하는 망발을 거리낌 없이 했다. 또 어느 구청장은 그 북새통에 먹방 사진을 올려 원성을 샀다. 우리 정치인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 우리의 삶터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장 먹고사는 서민의 민생문제, 국제적 역학관계 속 한반도의 위상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크게는 기후위기라는 엄혹한 현실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 과제를 풀어내려면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으고 실천적 대응을 이끌어야 한다. 분열이 아니라 대동의 정치가 전제돼야 한다.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가 아닌 공감하는 정치, 현안 앞에 머리를 맞대 고민하는 신뢰의 정치, 그러한 정치가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대통합의 정치는 말로부터 시작된다. 야비한 정치적 언사로 세상을 분열시킬 게 아니라, 자중하면서 겸허하게 민심의 바다로 나가는 것이 첫걸음이다.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