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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반전의 무명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13 19:17:2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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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강원도 산골에서 지낼 때 왼손 넷째 손가락을 다쳤다. 다친 손가락 가까운 손등에 낙타의 혹 같은 게 솟아났다. 석 달이 지난 지금도 불룩한 혹이 그대로 솟아있다. 평소 잊고 지내는데 약간 무리한다 치면 손가락과 혹이 통증으로 항의해온다.

그날 나는 산책을 할까 말까 갈등하며 비가 들이치는 로비에 서 있었다. 나가자니 미끄러운 흙길에 발을 삐끗할 것 같고, 거르자니 몸이 찜찜했다. 빗줄기는 세차게 내리꽂다가 금세 그치곤 했다. 그래, 나가자. 망설임을 접고 우산을 찾았다. 내가 쓰던 가벼운 우산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숙소에 비치된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마당을 벗어나자 나서길 잘했다 싶었다. 마을은 주천강 물소리와 부드러운 안개, 수직으로 내리는 빗줄기로 채워져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길은 인적 없이 고요했다. 나는 반쯤 홀린 채 한 시간 반 남짓 산책을 즐기고 돌아왔다. 숙소 마당을 걸어들어와 로비에 우산을 내려놓는데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이 스쳐 가면서 기분이 싸했다. 벽에 기대둔 우산이 미끄러지면서 쓰러졌고, 나는 불길한 예감의 진원지인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장우산의 무게를 견디느라 핏기 사라진 왼손이 희한한 각도로 꺾인 넷째 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나를 쳐다보았다.

사흘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상병처럼 황폐하고 외로운 심사가 일었지만, 삶은 계속되는지라 나름 치밀하게 인터넷을 검색해서 정형외과를 골랐다. 의사는 기묘한 형상으로 꺾인 내 손가락 엑스레이를 보여주면서 인대와 신경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했고, 손등에 튀어나온 혹에 대해서는 중수지관절의 변형 어쩌고 하면서 원인을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하면서 증상을 지켜보자기에 그날부터 파라핀 적외선 초음파 전기치료로 구성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의사 진료 대기, 물리치료실 대기까지 합해 두 시간쯤 걸리는 물리치료를 받고 나면 오전이 휙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치료에 정성을 다했건만 손등의 ‘낙타’는 꿈적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을 하는 게 낫겠죠?”

1분도 안 걸리는 진료를 매일같이 요구하며 장삿속을 시전하는 의사에게 왼손을 내밀면서 물었다. 의사는 내 손가락을 벌레처럼 들었다 놓고, 손등의 혹을 꾹 눌렀다. 수술해서 잘 되면 좋지만, 수술 후 재활치료를 빡세게 해야 하고, 상당히 고통스럽다. 오른손도 아니고 왼손 약지는 없어도 되는 손가락이다. 오죽하면 오래도록 무명지라 불렸겠나. 이런 요지의 말을 하고 의사는 자신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리치료 계속해서 받으면 이게 없어질까요?”

혹을 문지르며 물었다.

“아닙니다. 이게 작아지거나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뒤탈을 염려한 듯 의사가 분명하게 밝혔다. 나는 질문을 덧대지 않고, 손등의 혹과 꺾인 손가락을 내 몸의 일상적 상태로 받아들였다. 지병으로 보기 흉한 손을 가지고 수십 년간 산 내공 덕분인지 충격이 심하지는 않았다. 정작 괴로운 건, 키보드를 한 시간쯤 치고 나면 폭발하는 통증이 이제 20분, 길어봐야 30분쯤에서 튀어나오는 거였다. 올 초 모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키보드를 칠 수 없을 만큼 손가락이 망가지는 날이 오면 소설을 접고 걷는 사람이 되겠노라 호언장담했는데, 말이 씨가 된 듯했다. 10년쯤 후이겠거니 한 날이 3, 4년으로 줄었지 싶다.

강원도 숙소에서 함께했던 후배는 내 상태에 대해 듣더니 눈물이 나온다며 목소리를 떨었다. 후배를 달래느라 소설 그것 안 쓰면 그만이지, 전화기를 붙잡고 허세를 떨었다. 떨다 보니 그게 꼭 허세만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무명지도 잃을 게 없는 상황이 되자 세상을 향해 손가락을 뻗치면서 제 존재를 알리지 않았나 말이지. 나 또한 99% 무명지이니 손이 망가지든 말든 뭐라도 할 거였다. 존재감을 뻗치는 뭐라도 되거나.

안지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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