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용 씨의 여름 옥상은 열매 수확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다. 상추 케일 토마토 오이 호박 부추 오디 등을 먹었다. 올해에는 애플 수박도 키웠는데 당도가 높아 맛이 좋았다. 여름 한 철 피부를 그을려가며, 매일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려가며 작물을 돌본 곰용 씨를 생각하면 수박 3개라는 수확량이 아쉬운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매일 옥상에 올라 지지대를 세우고 진딧물을 잡는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그러고 보니 그는 즐기는 일이 많다. 가끔 스케치북을 펼쳐 그림을 그리고 일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 농구 동호회 모임에 간다. 물만 보이면 민물, 바닷물 가리지 않고 낚시부터 떠올리고 여름에는 꼭 물놀이한다. 만 하루 이상 집안에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그를 보면 그의 넘치는 체력, 활력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그와 다르게, 일 년 내내 집에만 있으라고 해도 잘 있을 사람이다. 누워서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굳이 활동해야 한다면 드라마를 보거나 책이나 조금 읽고 고양이와 느리게 뒹구는 정도. 그러면 지나가던 곰용 씨는 누가 고양이고 누가 이정임이냐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서른 중반 이후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는 신호가 왔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져서 오는 질병이 많았는데 요즘도 스트레스성 습진 때문에 가려움과 싸우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처방을 매번 듣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 낫지를 않나.
요즘 ‘루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생산성을 높이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의지와 노력으로 생활을 정돈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부러 의식하며 운동하고 영양제를 먹으면 나중에 저절로 운동과 영양제를 챙기는 습관이 생긴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믿었던 고양이도 자신만의 생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비교적 같은 시간을 들여 활동하고 그루밍한다. 그들도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며 산다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루틴을 만들어보겠다. 호기롭게 종이를 펼치고 지켜야 할 목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제로 뭘 지켜야 한다 생각하니 곧 괴로워졌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데 건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목록을 다시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건강을 지키라는 의미만 있지, ‘재미’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풀숲에 들어가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어떤 활동을 하든 스트레스는 생길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방법보다 스트레스와 평생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트레스가 되는 일을 겪어도 몸이 스트레스라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그게 재미였다! 평소 재미있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몸을 단련하면, 실제 큰 스트레스가 찾아와도 몸이 방어할 능력치가 높아질 것이다. 스트레스에서 재미를 느끼는 일은 곧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스트레스를 생활에서 찾는다면 취미 활동이다. 공부 악기연습 스포츠활동 등 곰용 씨도, 고양이도 하는 취미 생활을 나는 거의 하지 않고 지내왔던 거다.
나는 재미로 하는 공부를 계획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한자 수업을 찾았다. 등록하고 찾아갔더니 수강생 대부분이 어머니 또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한자 수업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맨날 들어도 돌아서면 까묵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노트에는 그 세대만이 가진 정갈한 글씨로 정리된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하루, 서로가 챙겨온 떡 요구르트 커피 등의 간식을 나눠 먹고, 작은 농담에 크게 웃으며 수업을 들었다.
낯선 환경을 꺼리는 편인데 한자 교실은 수업을 즐기는 수강생 때문인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음(心)을 덮었는데도(冖) 다투듯이(爪) 서서히(夂) 일어나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랑 애(愛)를 공책에 반복해서 쓰고 외우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몸을 고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미만 남지만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재미도 찾을 수 있다. 물론 ‘돌아서면 곧 까묵고’ 머리를 쥐어뜯겠지만, 사각사각 반복해서 같은 글자를 쓰는 재미는 마음을 덮어도 자꾸 생각날 것이다.
이정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