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아, 서원 씨.”
청소년 때부터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성장해온 나는, 이름으로 불리는 환경이 익숙했다. 새로운 환경, 사람을 만나더라도 늘 ‘서원’이라는 존재로 불렸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때는 내 곁에 함께 서서 나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조금은 알게 된 현재는 스스로 나를 소개하고 있다. 경력, 역량과 같은 스펙이 아닌 오롯한 나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내겐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타인의 ‘역할과 직함’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2021년 여름, ‘담당자 1’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고,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는 수많은 ‘역할’ 중 하나로 말이다.
그 일은 오랜 기간 미취업 상태 청년들의 사회진입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었는데, 나는 협력단체로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총 5기수, 한 기수에 60~90여 명, 6주의 기간 10~20명이 참여 가능한 9개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름 모를 뭇 청년을 대상으로, 최종적으로는 일자리 진입을 목표로 하는 것은 난생처음 맡은 일이었다.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참여자, 강사 모두에게 낯선 공간의 입구에 서서 참여자를 맞이하며 기색을 살폈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았으나,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은 타인들 속에 둘러싸여 긴장감 속에 어느 누구도 편안하지 못한 모습.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여러분께 안내 문자를 보냈던 매니저 서원이에요.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어요?”, “00님은 저 멀리 기장에서 오셨던데, 얼마나 걸렸어요?”라며,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건네고,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나서 오늘 모신 강사님을 소개했다. 어떤 고민 속에 강사님을 모셨는지, 강사님은 어떤 마음으로 참여를 해주셨는지, 참여자들은 무엇을 담고 가길 바라는 지 등이 주된 이야기였다. 불편한 공기가 싫어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던 건조한 눈동자에 약간의 생동감이 돌기 시작했다.
강사님의 진행 속에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또 끝이 났다. 공간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들이 밝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강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기도 했다. 잘 만났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익명의 타인들로 가득했던 첫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건조한 눈빛이 가득한 모습은 대학 강의실에서도 마주했던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모두가 익숙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을 지원한다고 펼쳐지는 공허한 현장들이 떠올랐다.
‘참여자라는 이름으로 머물렀던 환경, 내용 전달에 치중된 시스템이 반복되면 이들에게는 무엇이 내재되는 걸까. 드러난 내용만을 보고, 나에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능력만 학습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낯선 공간, 사람들을 오가며, 준비된 내용만을 전하고, 평가받는 것이 강사의 일상인가. 교감이 이뤄지지 않는 현장이 반복되면, 앞으로의 현장은 더욱더 공허해지지 않을까’.
‘기관 담당자는 행정체계 속에서 매번 다수의 청년을 어떻게 감당할까. 참여자, 숫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역할 너머의 모습을 상상하며, 넘나들면 더 많은 것을 만나고 느낄 수 텐데…’.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먼저 ‘나’로서 마주하는 것이었다. ‘담당자 1’로 만나 궁금할 것도 나눌 이야기도 없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참여자라는 집단 속의 하나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온전히 존중하고 싶었다. 정말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지만, 그것은 1년 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는 애씀이다.
동네청년공간 청년월동기지 운영 4개월째, 월 이용자 400명. 올해는 청년공간 매니저로 더욱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누군가를 지원한다고 하는 건, 나의 편의를 넘어서 한 개인이 오롯이 존재할 수 있도록, 다른 세계를 반갑게 맞이하고 곁에 함께 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는다.
동네청년공간인데, 우리가 동네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정서원 협동조합고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