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둔 인공지능 알파고도 이제 옛이야기가 되고 인공지능은 빠르게 우리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가령 함축과 배열의 예술인 시는 단어 하나만 잘못 써도 의미가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에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왔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쓴 시와 인간이 쓴 시가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시는 창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AI) 시극(詩劇) ‘파포스’가 이번 달 12~14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작가는 ‘시아(SIA)’인데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카카오 계열 AI 전문기업 카카오브레인이 지난해 11월에 공동 개발한 AI 시인이다.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의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 낳은 자식 이름이라 이번 무대가 인간과 기계가 공동 창작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파포스’는 시아가 쓴 시중에서 ‘고백’ ‘시를 쓰는 이유’ 등 20편으로 극을 구성했다. 이번 무대는 인공지능이 쓴 시를 연극 장르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신선한 시도다. 보통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기에, 형식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내용 자체는 일관성이 있기에 서로의 경계를 비교적 쉽게 넘나든다.
하지만 시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시 속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시는 뭉쳐 있는 이미지를 활자라는 도구로 표현한 시각예술에 가깝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전혀 다른 맥락에 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대미술과 비슷하기도 하다.
시를 감상하는 행위는 감상자의 상념에 근거한다. 사색이 불러일으키는 공명과 파장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준다. 하나의 단어가 주는 미학적 느낌이 아무리 강해도 궁극적으로 그 느낌이 시를 쓴 사람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깊은 의미를 깨닫기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감상자가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예술 분야가 감상자를 만나야 비로소 의미를 갖고 확장되는 법이지만, 시는 그런 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어떻게 시를 쓸까? 개발자 김근형은 “시아는 한 단어나 첫 문장을 보여주고 나머지를 예측하게 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학습했다”며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 0과 1을 활용해 30초 만에 시를 뚝딱 뽑아낸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수많은 작품들을 학습해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것은 일종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방은 무언가를 베낀다는 의미보단 본받는다는 의미가 강하기에 모방도 창작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위대한 화가라 불리는 피카소도 모방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모방은 플라톤 이후 서구 미학사에서 예술의 본질에 관해 논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다뤄지던 주제였다. 그만큼 모방은 예술의 핵심 개념으로 오랫동안 논쟁 대상이었다. 모방에 관해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창작을 한다고 볼 수 없는가? 글감을 입력하면 30초 만에 시 한 편을 뽑아낸다는 시아가 작품 ‘시를 쓰는 이유’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과연 30초 만에 탄생한 시들의 시집을 읽는 것과 한 사람의 고뇌가 응축된 시집을 읽는 일에는 차이가 없는 걸까? 아직까지 시를 쓰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감상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인간 시인만 가능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시극 ‘파포스’는 창작은 당연히 인간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만드는 신선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시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 곧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장종욱 동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스마트IT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