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전성시대다. 원래 시행령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대통령이 정하는 규정이다. 행정부가 최근 법률의 개정 없이 시행령을 통한 경찰국 신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귀)을 꾀하면서 시행령이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기실, 정치권에서 시행령을 둘러싼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여당 원내 대표로 있던 2015년의 사건은 상징적이다.
당시 여당은 정부의 잘못된 시행령을 바로 잡을 수 있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이 여당 대통령이 입안한 시행령을 국회에서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이 만든 시행령을 국회가, 그것도 여당에서 앞장서서 바로 잡겠다고 나섰으니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서는 여당의 행태에 분노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14일 만에 유 전 의원은 여당 대표직을 사임한다. ‘배신의 정치’는 지금도 유 전 의원을 괴롭힌다. 이처럼 시행령은 종종 정국의 뜨거운 감자였다.
중고등학교 사회과목 시간에 ‘법률에 의한 행정의 원리’라는 것을 배운다. 정부는 선출된 권력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서 행정을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문제는 전문화된 현대 행정에 관한 모든 사안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국회는 큰 틀에서의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이 법률에 근거하여 제정된 시행령이나 부령과 같은 행정입법을 통해 행정을 집행한다. 일종의 법률 분업이다. 단, 행정입법의 제정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므로, 우리 헌법은 제75조에서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는 원칙을 부여하고 있다. 현대 입헌주의 국가의 모든 국가는 이러한 입법 유형을 원용하고 있다.
경찰국 신설 문제를 보자. 야당에서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수행하는 사무를 정한 정부조직법에 ‘치안’ 사무가 없으므로, 경찰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두는 것은 위법이라고 한다. 정부가 경찰을 장악하여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여당은 거대해진 경찰권의 정당한 통제를 위해서라도 경찰국 신설은 필요하며, 그 신설은 시행령 개정으로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검사의 수사 범위에 관한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도 유사한 문제가 제기된다. 법무부는 검찰청법에서 검사의 수사가 가능한 범죄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중요 범죄’를 정하고 있으므로, 조문 상의 ‘등’과 ‘중요 범죄’에는 부패 또는 경제가 ‘관련된 중요 범죄’가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즉 부패 또는 경제와 ‘관련된 중요 범죄’라면 공직자 범죄도 선거범죄도 모두 검사가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검찰청법 개정 전의 검사의 수사 범위와 거의 같아지게 된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시행령 쿠데타, 시행령 정치”라고 비난한다.
시행령은 국가 비상시나 시급한 국정 현안을 처리할 때에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작금과 같은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에서나 법률 개정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입법을 우회 또는 대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유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권한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원칙을 와해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정권의 남용을 우려하여 그 남용을 금지한 것이 바로 ‘법률에 의한 행정의 원리’이다.
바쁠수록 정도로 가라는 말이 있다. 여소야대의 현 정부로서는 법률 개정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껄끄러운 법률 개정은 시행령으로 회피해가는 우회적인 수단이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도는 아니다. 정치에 있어 변칙은 언제나 패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정부가 입법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 지역소멸, 세계적 경제 위기 등의 문제를 모두 시행령으로 해결해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 미우나 고우나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이다. 그것이 빠른 길일 수 있다. 명심보감에,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순리는 집안을 지키는 근본이라는 말이 있다(讀書起家之本 循理保家之本). 국가라는 집을 잘 지키는데 ‘순리’ 만한 것은 없다.
최우용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법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