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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키르기스스탄서 휴먼 노마드를 생각한다

‘함께하는 삶’ 키르기스인, 소떼 몰며 대자연과 호흡

유목민과 같은 현대인도 공존하며 더불어 살기를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8-24 20:07:5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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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면 우리는 각자의 집을 나와 뿔뿔이 흩어진 채 자신이나 가족의 밥그릇을 채울 음식을 구하러 다닌다. 자동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탄 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각자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곳이 만족할 만한 먹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더 나은 곳으로 옮길 준비도 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현대인들의 삶 역시 유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은 자신을 닮은 인간을 거친 세상 속에 내던지면서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나약하고 모순적인 육체를 주었다. 덩치는 작지 않은 데 특별히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지니지 않은 별난 존재다. 신체적 무기도 없고 강한 체력도 없었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지능을 진화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살아남기에 적절한 기후와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며 살았다. 사냥을 통해 먹이를 마련하다가 어느 순간 가축을 기르는 것을 터득했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이들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유목의 삶을 이어간다. 가축도 살고 인간도 사는 선택이었다. 아니, 가축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았기 때문이리라. 인류가 절대적 파괴자가 아니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하튼 인류에게는 자신과 가족 이외에도 ‘돌보아야 할’ 존재가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가축은 단순한 ‘식재료’와는 분명히 다른 어떤 존재였다. 함께 숨을 쉬고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면서 대자연에 순응하고 때로는 함께 저항하면서 살아남은 동지 같은 존재였다. 비록 인간 스스로가 살기 위해 종종 그 가축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 살육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인류의 유목적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을 다녀왔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또다시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지하자원도 적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키르기스스탄이다. 약 3주에 걸친 횡단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동차가 아닌 이곳에서의 주요 교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탄 채 이동하였다. 그것은 엔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자동차와는 달리, 거친 숨소리와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강인한 생명의 등짝 위에 앉은 채 내 몸의 근육과 손끝으로 전하는 말고삐의 미세한 전율로 서로의 마음을 ‘교통’하는, 종을 넘어선 태초의 언어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거친 어머니인 대자연은 인간에게 먹을 것과 누울 곳을 주지만 때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었던 것을 사정없이 빼앗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오래전 인류는 어머니인 자연에 맞서기보다는 함께 공존하는 존재로서 겸손하게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에서 미신이라는 표현으로 단순화시켜버린 그들의 많은 행위들 역시 자연과의 순응이자 협치의 행위였으리라.

대자연 속에서 미숙하고 나약한 인류가 선택한 또 다른 지혜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생활방식이었다. 어쩌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서로 돕는 동물들의 생활방식에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연대의 힘을 키웠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었고 대자연 앞에서의 공포와 두려움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여전히 계절에 따라 가축을 이동시키기 위해 부분적인 유목 생활을 하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 가축을 잘 먹이기 위해 유르트라는 천막집을 ‘치고 걷는’ 일상을 반복하며 함께 이동 생활을 한다. 말 등에 몸을 맡긴 채 소 떼를 몰고 가는 목동들의 입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 온다. 가사의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귀에 들어온다. ‘짝셰’, 키르기스어로 ‘좋다’는 말이다. 추측하건대 ‘이 얼마나 좋으냐’ 정도의 가사가 아닌가 싶다.

우리 인류의 핏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여행을 꿈꾸고 달나라를 개척하고 화성 탐사를 계획하고 심지어 디지털 지구를 만들어 이동을 하고 있다. 다만 생명을 위한 이동이 아닌 기계화된 대상과 함께 인공적인 것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의 이동이 현대사회의 유목일 것이다. 그러기에, 거친 숨결을 느끼며 나와 호흡을 맞추던 말을 대신하여 나의 조작에 의해 완벽하게 말 잘 듣는 자동차를 타고 타자와의 공감과 돌봄이 빠진 채 오직 내 통장 잔고를 채우기 위한 공간으로의 이동을 반복하는 우리들, 즉 현대의 유목민들은 키르기스스탄의 목동들처럼 “짝셰(참 좋다)”를 흥얼거릴 수 없다. 그러니, 문명과 산업의 발달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호흡을 맞추던 오래전을 상기하면서 디지털 현실 속에서도 대자연을 비롯한 타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함께’ 어울려 산다면, 우리도 ‘참 좋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늘도 유목을 길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길가에 핀 풀잎의 흔들거림과 빌딩 숲을 지나는 바람과 햇살과 구름의 속삭임에서조차 오래전 어울려 살았던 대자연을 느끼면서 말이다.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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