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기장군 말미잘탕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8-07 19:08:1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네 발로 기어 왔다가, 두 발로 걸어 나갑니다.”

수족관에서 갓 건져 올린 말미잘. 형광색 낚싯줄을 물고 있다.
부산 기장군 어느 음식점 벽에서 발견한 문구다. 숙취에 시달리다 해장으로 구원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술꾼이라면 격하게 공감할만한 말이다. 네 발로 기어 오다시피 한 고객을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도록 기력을 회복시켜 준 음식은 다름 아닌 말미잘탕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로지 기장군의 몇몇 음식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별미다. 나는 이 문구를 발견한 이후로 기장을 찾는 지인이나 관광객에게 말미잘탕을 꼭 추천한다.

그럼 말미잘탕이 숙취 해소에 정말 그렇게 효과가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말미잘의 영양성분이나 효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 말미잘에 대한 유일한 과학적 접근 사례는 지난 2018년 포스텍에서 홍합과 말미잘의 단백질을 활용해 상처 부위의 혈액을 응고시키는 지혈 소재를 개발한 사례가 유일하다. 말미잘 따위를 먹겠다고 생각한 전례가 없으니 말미잘의 영양성분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턱이 없다.

기장군에서 말미잘을 먹기 시작한 것은 30년 남짓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붕장어를 잡을 때 말미잘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기장군의 명물인 붕장어는 통발과 주낙 두 가지 방식으로 잡는다. 통발은 미끼를 넣은 통발에 붕장어를 가두는 방식이고, 주낙은 하나의 긴 줄에 미끼를 끼운 바늘이 달린 수백 개의 낚싯줄을 던져서 붕장어를 낚는 방식이다. 말미잘은 바로 이 주낙에 달린 미끼를 물려다 몸통에 낚시 바늘이 걸리면서 올라온다. 괴상하게 생겨 잡자마자 그냥 버렸는데 양이 만만찮았다. 처음에는 물메기탕을 끓일 때 손질한 말미잘을 썰어 넣어봤다. 물메기의 물컹물컹한 식감과 말미잘의 꼬들꼬들한 식감이 잘 어울렸다. 내친김에 보양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붕장어와 말미잘을 뭉텅뭉텅 썰고 된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하고 방아잎을 듬뿍 올려 매운탕처럼 끓였다. 맛의 골격은 대부분 붕장어가 잡아준다. 그래서 붕장어가 주연인데 음식의 이름은 조연인 말미잘이 꿰찼다. 덕분에 기장을 대표하는 여름 보양식이 되었다.

기장의 횟집 수족관에서는 심심찮게 말미잘을 볼 수 있다. 수족관에 있을 때는 하늘거리는 촉수가 꽤 이쁘다. 그런데 대부분의 말미잘에 형광색 낚싯줄을 물고 있다. 붕장어 주낙에 딸려온 말미잘임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나는 말미잘이 품고 있는 낚싯줄이 꽤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말미잘을 먹기위해 일부러 잡으러 다닌다고 하면 처지가 너무 곤궁해 보인다. 하지만 붕장어를 잡으려다 딸려온 말미잘을 버리지 않고 음식으로 활용했다고 하면 지혜로 읽힌다. 말미잘이 품고 있는 낚싯줄은 가난함과 지혜를 가르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그리고 지혜롭고 억척스러운 기장 사람들은 같은 주낙에서 잡힌 붕장어와 말미잘을 활용해 근사한 여름 보양식을 탄생시켰다. 진정한 창조경제의 실현이다.

음식의 탄생 비화가 아주 거창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난히 무더운 2022년 여름, 기장에 가셔서 말미잘탕을 드시면 먼 훗날 기장을 대표하는 향토음식 서사의 목격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네 발로 기어가서 두 발로 멀쩡히 걸어 나오는 기적을 체험하시게 될지도 모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형 급행철도(BuTX) 모델은…고속·수소전동차, 하이퍼루프 3파전
  2. 2‘짓고도 못쓰는’ 자갈치아지매 시장 내후년 문 열까
  3. 3부산대병원장 임명 미루는 교육부, 배경엔 대통령실?
  4. 4기다려! 유럽 빅리그…내가 접수하러 간다
  5. 5연 10% 적금에 1277억 몰려…남해축협 해지 읍소(종합)
  6. 6화물연대 파업 부산은 해산 결정, 갑자기 왜?
  7. 7유치원 찾아 삼만리…대단지 아파트 입주민 발동동
  8. 8‘한 명의 아이도 포기않겠다’…공교육 표준 마련에 헌신
  9. 9여당몫 상임위원장 5명 교체…PK 3명
  10. 10대우조선도 에어부산도…산업은행장 손에 달린 PK 현안
  1. 1여당몫 상임위원장 5명 교체…PK 3명
  2. 2속도내던 메가시티 해산, 브레이크 걸렸다
  3. 3김건희 여사 부산 방문해 깜짝 자원봉사
  4. 4김건희 여사 부산 금정구 몽실커피 깜짝 방문, 직원들 격려
  5. 5부산 온 안철수 "당 대표 되면 총선 170석 획득해 승리 견인"
  6. 6윤석열 지지율 5개월만에 40%대, 정당은 국힘이 역전
  7. 7세 과시한 친윤…공부모임 ‘국민공감’ 의원 71명 참석
  8. 8비명계 “이재명 100일, 방탄 빼고 뭐 했나”
  9. 9여야 예산안 협상 '벼랑끝 싸움'..."초당적 협조"VS"부자 감세"
  10. 10도 넘은 北 '이태원' 흔들기...미사일에 악성코드 보고서까지
  1. 1‘짓고도 못쓰는’ 자갈치아지매 시장 내후년 문 열까
  2. 2대우조선도 에어부산도…산업은행장 손에 달린 PK 현안
  3. 3野 ‘안전운임 3년 연장’ 수용에도…정부 “타협없다, 복귀하라”
  4. 4화물연대 파업 16일 만에 끝났다
  5. 5화물연대 업무 복귀했으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
  6. 6창업기업 지원 ‘BIGS’ 매출·고용 목표치 껑충
  7. 7'한전법 개정안' 부결 파장…정부, 전기료 인상 조기 추진
  8. 8수산식품산업 현재와 미래, 부산서 찾는다
  9. 9따뜻했던 11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늘었다
  10. 10한빛 4호기 5년 만에 재가동 확정…시민단체 반발 예고
  1. 1부산형 급행철도(BuTX) 모델은…고속·수소전동차, 하이퍼루프 3파전
  2. 2부산대병원장 임명 미루는 교육부, 배경엔 대통령실?
  3. 3연 10% 적금에 1277억 몰려…남해축협 해지 읍소(종합)
  4. 4화물연대 파업 부산은 해산 결정, 갑자기 왜?
  5. 5유치원 찾아 삼만리…대단지 아파트 입주민 발동동
  6. 6‘한 명의 아이도 포기않겠다’…공교육 표준 마련에 헌신
  7. 7수능 성적표 받아든 고3 희비 교차
  8. 8올 수능, 수학 어렵고 국어 쉬웠다…이과생 ‘문과침공’ 거셀 듯
  9. 9울산 곰 탈출 두번째 되풀이 결국 60대 2명 사망 참변으로
  10. 10우리 탈출한 곰 3마리 주인 부부 습격...2명 숨져(종합)
  1. 1기다려! 유럽 빅리그…내가 접수하러 간다
  2. 2토트넘 한솥밥 케인-요리스 ‘맞짱’
  3. 3PK의 저주…키커 탓인가, 골키퍼 덕인가
  4. 4벤치 수모 호날두, 실내훈련 나왔다
  5. 5슈퍼컴은 “네이마르의 브라질 우승”
  6. 6[카드뉴스]월드컵 상금 얼마일까?
  7. 7무적함대도 못 뚫었다…다 막은 ‘야신’
  8. 8거를 경기 없다…8강 10일 킥오프
  9. 9축협 저격? 손흥민 트레이너 폭로 파장
  10. 10프랑스 또 부상 악재…음바페 훈련 불참
우리은행
한국마사회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시민의 힘으로 위트컴 장군을 기립니다
함께하는 나눔, 지속가능한 부산
기명칼럼 [전체보기]
출구전략이 아니라 전력투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남은 4년 6개월
기자수첩 [전체보기]
경찰 억울? 희생자 입장서 보라
화포천습지를 동식물 복원 중심지로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민주당, 가망 있을까?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출산율 0.73 부산에 수의대를 허하라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부산대첩과 군악 대취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울경 합동추진단 예산 삭감 논란을 보며
차라리 정권과 금융계 수장 임기 맞춰라
도청도설 [전체보기]
우크라이나의 투혼
코리안 에이지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그까짓 거, 못 먹을 수도 있는 거죠
벼의 건조와 밥맛
사설 [전체보기]
부산형 급행철도 구체성 높여 시민 설득하라
건강보험 누수 막고 합리적인 재조정 나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빨라야 위태롭지 않다
안전띠가 귀찮은 당신에게
아침숲길 [전체보기]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에너지 가치사슬의 완성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한국, 세계의 중심국이 되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부산을 그리다
중세 기후일탈과 대응을 현재에서 보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정치인의 언어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을까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대한민국의 미래, 부울경 메가시티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난국 탈출, 대통령의 공감과 감응부터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이태원 연가
와인 한잔할래요?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절대음감
베토벤의 머리카락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석촌 윤용구의 ‘노근란’
신명연의 ‘양귀비꽃’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경영 시대, 민간과 공공 구분이 없다
메타버스 ‘오시리아 플랫폼’
  • 신춘문예공모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