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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봉의 음악이야기] ‘보리밭 사잇길로’ 윤용하

  • 하순봉 작곡가
  •  |   입력 : 2022-07-31 19:29:5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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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부산 중구청이 2009년 가곡 ‘보리밭’을 기념하고자 자갈치 친수공간에 만든 노래비.
광복절 노래의 가사다. 올해가 어언 광복 77주년이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누구일까? 윤용하다. 언뜻 이름이 낯설지만 가곡 ‘보리밭’의 작곡가라면 다들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당시 정부가 공모했는데 윤용하의 노래가 채택됐다고 한다. 윤용하는 동요‘나뭇잎배’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올해는 이 윤용하(1922~1965)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황해도 은율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며 이후 만주로 이주해 선양에서 조선합창단을 조직, 활동했고 광복 후에는 귀국해 이흥렬 등과 함께 국민개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6·25전쟁 땐 종군작가로서 군가도 많이 작곡했다. 그 시절의 예술가가 다들 그러했지만 윤용하의 노래에는 특히 우리 민족의 애환이 많이 담겼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런 윤용하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올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그는 가곡 외에도 교향곡 ‘개선’, 오페라 ‘견우직녀’ 같은 규모 있는 작품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역시 보리밭이다. 이 노래가 탄생한 곳은 바로 부산이다. 6·25 당시 부산은 피란지로서 전국의 예술가가 다 모이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들의 애환과 예술혼의 자취가 부산 곳곳에 남아 있다. 자갈치의 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던 윤용하는 같은 고향 출신의 시인 박화목을 만나게 된다. 같은 고향에 연배도 비슷하고 둘 다 기독교와 가톨릭의 독실한 신자였다. 이런 공통점으로 둘은 금방 의기투합했을 것이다. 박화목은 ‘옛생각’이라는 서정시를 윤용하에게 건네줬고, 며칠 뒤 윤용하는 보리밭이란 제목으로 바꿔 노래를 완성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산 중구청은 2009년 이 보리밭을 기념하기 위해 자갈치 친수공간에 노래비를 만들었다. 자갈치에 가면 꼭 한 번 이 노래비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1980년대 초반 인기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가곡 ‘비목’이 대유행하면서 덩달아 우리 가곡 전체가 대중가요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많은 성악가가 가곡 음반을 발매했고 몇몇 대중가수는 가곡을 가요처럼 부르곤 했다. 그때는 한마디로 가곡이 아주 친숙했다. 그 신드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결론은 우리 가곡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 공감을 줬다는 것이다. 가곡은 사실 일제 하와 6·25 시절을 거치면서 탄생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해 서양의 예술가곡과는 조금 다른, 쉬운 대중성을 갖는 국민가곡이라고 한다. 이 곡들은 특히 시대의 아픔을 노래해 그 노랫말과 선율이 절절할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에 다들 불렀던 가곡들! 그때는 그냥 불렀던 그 노래가 드라마에 나오면서 잊었던 어릴 적의 추억과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에 우리 영재들이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제패하며 우수한 음악의 유전자를 뽐내고 있지만 그 유전자 속에 한국 가곡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직업상 세계 여러 나라의 가곡을 알고 또 좋아하지만 우리 가곡은 분명 그들이 주지 못하는 다른 감동을 준다.

윤용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 가곡의 전성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온갖 음악이 범람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 가곡들도 좀 더 많이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이 독일을 대변하듯 우리 가곡도 우리의 삶과 역사를 늘 대변해 온 그런 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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