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언제이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모두가 퇴근할 때라고 말할 듯하다. 다음으로 많이 나올 수 있는 답은 아마 점심시간이 아닐까 싶다. 고된 업무에서 잠시 쉴 틈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는 기쁨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물론 오늘은 뭘 먹어야 하냐는 고민은 있을 법하다. 그렇지만 식사 자리에서 쑥덕쑥덕 직장 상사를 흉보는 기회까지 주어진다면 먹는 재미 외에도 쾌감은 한층 늘어나게 마련이다.

근데 요즘 직장인 뿐만 아니라 외식을 선호하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았아 가는 일이 생겨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외식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까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부산의 외식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올랐다. 짜장면의 가격 상승률은 13.1%였으며 볶음밥은 12.4%, 돼지갈비는 11.1%, 짬뽕은 10.7%, 갈비탕은 10.2%, 라면은 9.0%, 돈가스는 8.9%나 됐다. 실질소득 감소로 직장인의 지갑이 자꾸 얇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자료를 살펴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6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는 120.04(2015년 수준 100)로 5월보다 0.5% 올랐다. 이 지수 상승은 향후 소비자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품목별 상승률은 농산품 1.2%, 수산품 3.0%, 공산품 0.7% 등으로 집계됐다. 돼지고기 가격은 전달보다는 5.3% 내렸으나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서는 19.2% 올랐다. 닭고기 우럭 갈치 등의 가격 상승도 만만찮다. ‘밥상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오이 대파 상추 깻잎 등 채소의 가격 오름세도 가파르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는 전월 대비 생산자물가지수 상승폭이 4월(1.6%)과 5월(0.7%)을 거쳐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것 정도다.

상황이 심각해지니 정부의 고민도 커진다. “국민 밥상과 직장인 유리지갑부터 먼저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현재로서는 ‘백약이 무효’인 처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장의 무기로 꺼내 들었던 유류세 인하와 할당관세 확대 등의 효과도 아직은 별로다. 식품제조·외식·커피수입업체와 축산업 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나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에 힘을 보태줄 것을 호소하는 한편 비축물량 방출을 통해 가격 폭등을 막으려 애쓰지만 만족한다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서민의 시름을 깊어지게 만들 요인은 또 있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물가 상승 억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생산자물가지수만해도 6개 월 연속 상승세에다 지난 3월부터 4개 월 연이어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9.9% 상승하면서 19개 월 동안 계속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6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가 닥쳤던 지난 1998년 11월 이후 24년 만에 6% 상승률을 기록했다.

더 큰 우려는 정부에서조차 6% 물가가 하반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우울한 관측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6%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 10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다만 7%, 8% 물가가 상당 기간 고정화되는 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정부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음을 자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에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21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하향 조정하면서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2%에서 4.5%로 대폭 올렸다. 일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달 말 수정전망치를 발표할 때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을 상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IMF는 한국의 물가 상승률을 3.1%로 전망했지만 4월에는 0.9%포인트 오른 4.0%를 제시했다.

임기 초반임에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인사 문제와 사적 채용 논란, 걸러지지 않은 발언 등은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의 등마저도 돌리게 만든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의 이유에는 ‘민생과 경제를 살피지 않는다’는 지적도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이전 정부와의 차별을 위한 정체성 확보나 각종 제도 개선, 규제 완화 등과 같은 노력을 무시할 필요는 없으나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은 먹고 사는 것에 쏠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많은 이는 이제 현 정부에 대해 대체 무엇이 중한가라고 물어보고 싶어 할 터다. “집이나 밖에서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도 힘에 부친다”는 볼 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면 정말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다.

염창현 세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