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 8일 나라현에서 거리 유세를 하다 총격으로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8년9개월 동안 집권한 역대 일본 최장수 총리다. 2006년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다. 그러나 5년 뒤인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해 독주 체제를 유지하다 2020년 9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사임할 때까지 7년 9개월 연속 재임했다. 2020년 8월 사임 이후에도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주도하며 한국과 극한 대립을 촉발했던 당사자였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문제 등으로 재임 중 한국 정부와 정면 충돌했다. 특히 양국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한국 대법원의 2018년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 판결의 사실상 보복으로 반도체의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수출제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올해 1월 한국이 반대하자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보류하려고 했으나 아베 전 총리가 압박해 이를 재 추천하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 사망은 정치인에 대한 테러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위로를 받고 있다. 또한 향후 정계 구도 변화에 일본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10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선거구와 비례대표로 참의원 절반인 125명(보궐 1명 포함)이 선출됐다. 참의원 의석수는 248석이며 의원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이 물갈이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피습 사망으로 ‘동정표’까지 받아 자민당 압승이 예상된다. ‘아베파’가 정국 주도권을 쥐면 일본헌법인 평화헌법의 핵심 9조를 바꿔 자위대 역할을 명시하는 개헌이나 방위비 대폭 증액 등 일본 군비 강화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 내내 개헌을 추진한 바 있다. 이럴 경우 한일 관계 경색은 심화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파’가 와해되고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개헌에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돈을 풀어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한 아베 전 총리와 달리 기시다 총리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중요시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 피습 사망의 후폭풍이 미치는 이번 선거 이후 일본 정치와 사회변화에 우리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