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인기 과일로 수박을 빼놓을 수 없다. 수박이라는 이름은 박 같이 생겼고 물이 많아 붙여졌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2세기 전후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1611년 허균이 우리나라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하려고 쓴 책 ‘도문대작’ 에는 고려 때 몽골 장수 홍다구가 개성에 수박을 심은 것이 시초라고 전한다. 중국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부터 들어왔다 하여 ‘서과’로 불렸다.
지금은 흔한 과일이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40㎏)이었다고 한다. 쌀 다섯 말을 지금의 물가수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15만 원이 조금 넘는다. 세종 5년(1423년)에는 수박 한 통을 훔치다 들킨 궁궐 주방 담당 내시가 곤장 10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수박은 양반들이 먹는 귀한 과일이었다. 수박을 훔쳐 먹는 쥐들을 그린 겸재 정선의 ‘서과투서’와 신사임당의 ‘수박과 들쥐’ 그림도 유명하다. ‘서과투서’는 쥐가 수박을 훔친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들쥐는 재물을, 수박은 씨가 많아 자손을 뜻했다. 두 작품 모두 후손의 번영, 재물과 풍요로움을 의미했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숨어있는 공산주의자를 겉은 초록인데 속은 빨간 모습에 빗대 수박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수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박은 이재명 의원 지지층이 ‘겉은 푸르면서 속은 빨갛다’며 이낙연 전 대표 측을 비롯한 친문(친문재인)계 정치인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지난해 9월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대장동 특혜 의혹을 방어하면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에게 ‘수박 기득권자’라고 해 논란이 일었다. 이번 수박 논쟁은 친정세균계 3선인 이원욱 의원이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맛있네요”라고 올린 데서 시작됐다. 일부 의원이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책임론’을 펴자 강성 이재명 지지층이 이들을 수박이라고 비난해서다. 이 의원의 수박 사진에 친이재명계인 김남국 의원은 “국민에게 시비 걸듯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렸다”며 비판했다.
‘수박’ 단어를 놓고 계파 간 설전이 이어지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했다. 우 위원장의 으름장에도 계파 갈등은 여전하고 애꿎은 수박 논란이 거듭된다.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되려고 하면 뭘 해도 잘된다는 의미다.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민주당이 죄없는 수박 탓만 하는 꼴이 볼썽사납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