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뉴욕과 보스턴을 다녀왔다. ‘코로나19’가 하늘길을 막은 지 2년여 만의 해외 나들이였다. 출국 전과 귀국 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불편할 정도의 절차는 아니었다. 물론 비싸진 항공료와 불리한 환율은 여행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청년 시절 상당 기간 미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의 미국 사회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뉴욕은 코로나에서 완전히 해방된 듯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맨해튼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가는 식당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앉을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정부의 강제적 마스크 착용 요구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던 미국 사회는 이제 완전히 ‘자유(Liberty)’를 되찾은 것이다. 미국 시민에게 있어 자유란 유전자(DNA)에 입력이 되어 있다 할 정도로 여기는 최고의 가치이다. 미국인들이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 독립선언서 (1776년)에 ‘자유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천부적(天賦的) 권리로 만약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면 바로 퇴출시켜야 한다’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고작 코로나 역병 따위가 어떻게 하늘이 내린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여행 기간 중 미국 텍사스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나 어린 학생들이 다수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총기 소유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총기 소유의 자유를 주장하는 전미총기협회(NRA)는 예정대로 연차대회 개최를 강행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연사로 나서 “총기 난사를 한 파렴치범들의 일탈행위 때문에 자유라는 중요 가치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자유에 대한 깊은 신념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논리이다.
보스턴에 소재한 주요 대학을 방문해 행사에 참석했다. 원래 기독교 전통으로 세워진 대학이라 행사에 앞서 기도를 하는 순서가 있었다. 교목(校牧)의 기도문을 가만히 들어보니 어떤 신(神)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어떤 특정 종교의 뉘앙스가 풍기지 않도록 극도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기도문에는 포용(inclusion)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왔다. 이는 미국 사회의 또 하나의 가치 축인 ‘평등(Equality)’을 배려한 데 기인한 것이다.
1831년 미국을 둘러본 프랑스의 유명한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American Democracy)’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평등’이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미 오래전 지적한 바 있다. 사회가 평등해지려면 모든 사람의 가치관 생활양식 입장을 배려하고 포용해야 하는데, 배타적 가치관에 기초한 말이나 행동은 평등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등을 너무 강조하면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미국 대학 캠퍼스를 거닐어 보니 수많은 중국 유학생이 재학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현지 대학관계자 이야기가 “하버드 MIT 예일과 같은 유수대학도 중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유지되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대학원의 경우, 대다수가 외국인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통계를 보니 미국에 유학을 와 있는 외국인 학생 중 중국 학생이 단연 1위로 31만7000명(2021년 기준)에 이른다.
겉으로 보기에 미·중 관계는 패권적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매일 쏟아내는 상대방을 향한 대변인 성명은 매우 적대적이다. 그러나 중국 유학생의 존재 하나만 보더라도 양국 관계는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 유학생이 미국 대학과 사회에 가져다주는 재정적 이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이들이 쏟아내는 우수 연구결과물을 통해 얻는 미국의 과학기술적 이득도 상당하다. 또한, 이들이 미국생활을 하며 보고 배우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은 먼 훗날 중국 사회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중이 갈등하면 서로 잃어버릴 것이 더 많은 구조이다.
미국 사회가 앞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중요 가치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지, 또 날로 불편해지고 있는 미·중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그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 우리 사회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항로를 우회한 유난히 긴 귀로에서 필자를 상념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주제였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