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의 숙원인 동구 범일동 ‘미군 55보급창’이전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 옆에 위치한 미군 용산 잔류기지 예정지를 돌려받고 대체부지를 제공하는 방안을 미군 측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2020년 한미 정부가 이곳에 미군 잔류기지를 건설하기로 합의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뒤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미군기지와 인접하게 돼 보안·외교상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도심 미군기지 이전 논의는 그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 만큼 용산기지와 55보급창을 함께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와 북항 2단계 재개발의 필수 공간인 55보급창은 윤 대통령도 이전을 약속한 바 있다.

55보급창(22만3000㎡)은 부산항 북항 8부두(4만㎡)로 들어오는 미군 장비와 물자를 보관했다가 국내 미군기지로 보급하는 곳이다. 세계박람회가 개최되는 북항 2단계 재개발 사업지(228만㎡)의 핵심 공간인 자성대부두와 붙어 있다. 이 때문에 200만㎡ 이상의 행사장이 필요한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고 북항 2단계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선 55보급창 부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이전 대상에는 8부두도 포함된다. 부산시는 그래서 55보급창 이전과 경부선 철도 지하화 등을 원도심 개조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55보급창과 8부두를 거점으로 동천과 북항, 남항을 잇는 크루즈 관광 루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55보급창을 이전해야 한다. 시는 앞서 55보급창을 부산신항 남쪽 잡화부두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부산항만공사(BPA)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하는 순간 세계박람회 유치와 북항 2단계 재개발 전망은 흐려진다.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부산세계박람회TF에서 55보급창 이전 문제를 논의한 건 그런 까닭에서다. 당시 국방부는 “해양수산부가 대체 부지와 항만을 제공하면 미군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대체 부지 확보가 이전의 관건이다. 신항 남컨테이너부두와 신선대부두가 대상으로 거론됐으나 진전은 없는 상태다. 국방부 해수부 등 55보급창 이전과 관련된 부처들의 유기적 소통을 도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하나 이 또한 추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과연 55보급창 이전을 시급한 과제로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55보급창 이전은 지금이 호기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참모진에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전담팀을 뒀다. 또 수석비서관회의의 첫 지시사항으로 매주 부산세계박람회 유치활동에 대해 보고하도록 했다.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해 직접 챙기는 셈인데,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나. 부산시는 용산기지와 55보급창 이전을 함께 논의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 바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일을 기약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