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육회비빔밥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5-17 19:47:12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밥은 한번 짓고 나면 식으면서 맛과 향이 떨어지는 것이 숙명이다. 이 과정을 ‘밥의 노화’라고 한다. 인간의 노화와 마찬가지로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지금까지도 밥의 노화 역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은 말 그대로 밥의 온도를 유지해주는 기능에 그친다. 밥을 따뜻하게 유지해주지만 잃어버린 맛까지 살려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전 세계 전기밥솥 제조사의 영원한 숙제다.

나는 육회비빔밥을 맛보다 추억으로 먹는다.
우리 조상들은 노화된 밥을 살리는 두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토렴은 노화된 밥에 뜨거운 국물을 끼얹어 밥에 온기와 맛을 불어넣는 조리방식이다. 토렴을 하려면 항상 국물이 팔팔 끓고 있어야 한다. 토렴이 여의찮을 때 선택한 것이 비빔밥이다. 밥 위에 나물과 푸성귀를 올리고 참기름이나 고추장 한 숟갈을 올려서 비볐다. 불이 없어도 노화된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비빔밥은 현장의 밥이며 농민의 밥이다.

그런데 비빔밥 앞에 ‘육회’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육회비빔밥은 날것으로 먹어도 될 정도로 싱싱한 쇠고기가 있어야 가능한 음식이다. 노화된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요리다. 전주비빔밥이나 진주비빔밥이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향토음식이 된 배경에는 육회의 도움이 크다. 전주와 진주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동네가 더러 있다. 전라북도 익산, 전라남도 함평, 전라남도 구례 등이다. 이런 동네의 연혁을 살펴보면 가까운 곳에 어김없이 우시장이나 도축장이 있었다.

밥과 쇠고기 육회, 그리고 둘을 단단하게 엮어주는 고추장의 조합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과 감칠맛이 증가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꼭꼭 씹게 된다. 나는 이 조합을 유난히 좋아한다. 밥 육회 나물 고추장이라는 단순한 조합이지만 육회비빔밥은 지역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맛과 풍류의 고장답게 전주는 담음새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오방색을 가지런히 맞추고 상차림도 어지간한 한정식 못지않다. 진주는 물기를 뺀 나물을 잘게 다져서 고명으로 올리기 때문에 씹을 때의 느낌이 좋다. 익산은 손님에게 내기 직전에 밥을 비비고 그 위에 양념한 육회를 올리기 때문에 감칠맛이 폭발한다. 함평은 밥을 비빌 때 돼지비계를 몇 점 같이 넣는다. 육회와 함께 씹히는 돼지비계가 별미다. 구례의 경우는 육회비빔밥에는 선짓국이라는 ‘국룰’을 깨고 보리새우를 우려낸 국물을 낸다. 그 국물이 육회비빔밥 못지않게 입맛을 당긴다. 지역의 환경과 지역민의 기호가 만들어낸 방식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그저 모든 육회비빔밥이 각별한 맛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육회비빔밥을 자주 먹이셨다. 어린 녀석이 육회비빔밥을 야무지게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며,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농부마냥 흐뭇해하셨다. 육회비빔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그때 할머니의 표정이 떠오른다. 나는 그 표정을 잊지 않기 위해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동네를 지날 때면 반드시 육회비빔밥을 먹는다. 나는 세상 모든 육회비빔밥이 다 맛있다. 음식에 추억이 결합 되면 이래서 무섭다.

누군가 내게 “맛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맛은 곧 당신”이라고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3. 3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4. 4[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5. 5“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6. 6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7. 7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8. 8‘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9. 9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10. 10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5. 5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6. 6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김희정 "'대입 원서 접수번호로 경쟁률 유추 가능' 사실로 확인…정부 대책마련해야"
  8. 8연휴 강타한 우크라 포로 송환· DMZ 지뢰사고 늑장조사 논란
  9. 9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0. 10울산 북구·구의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맞손 잡았다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5. 5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6. 6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7. 7“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8. 8세 가지 맛 한 번에…CU 트리플 삼각김밥 가성비 한 끼 호응
  9. 9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10. 10대출 갈아타라더니…은행 16곳 중 11곳 주담대 ‘금리 역전’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3. 3‘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4. 4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5. 5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6. 6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7. 7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8. 8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9. 9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10. 10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7. 7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8. 8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9. 9[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10. 10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인간만의 영역 ‘관광과 과학’의 결합
국제칼럼 [전체보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추석 밥상에 오를 이재명 정부의 성적표
기고 [전체보기]
존엄 보장하는 부산형 청년보장제 되기를
복합재난에 강한 도시의 조건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부캉이가 띄운 북항
작자 미상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DMZ 지뢰 추정 폭발 사고, 엄정·신속한 진상 규명을
미중 한반도 논의…북미 대화 국면서 한국 역할 중요
세상읽기 [전체보기]
북항 찾은 상어 ‘부캉이’와 잊힌 갈매기 ‘부기’
‘지방시대위’ 부산 이전, 다시 뛰는 대한민국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6·3 부산시장 선거, 부동산 정책의 길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청년·노인 예산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