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과거 ‘금융 투자사고 다발지역’이었다. 1999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파이낸스 회사 중 대형 5개 사, 소형 6개사가 파산하면서 부산시민의 금융 고난은 시작됐다. 어디 이뿐인가.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노후자금을 찾으려는 예금 가입자의 절규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1997년부터 2011년 사이 발생한 금융사고로 피해자는 11만 명, 피해액은 1조5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부산시민의 금융복지 상태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통계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2020년 중·장년층 행정통계’를 보면 부산시민 중·장년층(40~64세)의 연금 미가입률은 27%로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다. 부산 중장년층의 4명 중 1명 이상은 미래 노후준비가 안된 것이다. 이 상황이 그대로 진행되면 부산은 ‘노후 금융빈곤 도시’가 될 것이다.
금융복지(Financial Wellbeing)는 금융을 ‘아는’ 수준에만 한정하지 않고 ‘실천하는’ 수준까지 포함한다. 부산시민의 금융복지를 위해서는 금융지식 외에 바람직한 금융행위(노후 재무설계)와 금융태도(저축과 소비태도)를 요구한다. 윤희정 박사의 ‘금융이해력 결정 요인에 기초한 부산시 성인 금융교육의 방향(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2021)’ 논문에서 부산시민 중 노후 대비 재무목표 설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177명 중 112명(63.3%), 이를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86명(48.6%)에 불과했고, 상당수인 65명(36.7%)은 노령화에 대비해 연금에 대한 인식도, 행동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MJ 드마코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3종류의 돈 항아리를 제시한다. 가족이 함께 거주할 ‘주택 항아리’와 노후를 대비한 ‘연금 항아리’는 필수적인 항아리이며, 3번째 ‘노는 돈 항아리’는 앞서 두 항아리를 풍부하게 채우거나 창업과 투자를 위한 것이다. 부산시민의 27%는 필수적인 두 번째 연금 항아리가 비워져 있다. 비워졌거나 충분치 못한 이 연금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투자에 열광한다. 올해 3월 기준 국내 주식투자자는 1373만6703명으로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급변하는 금융시장은 연금 항아리를 훼손시키고 있다. 미 연준이 코로나 시기에 풀었던 자금으로 인해 두 자릿수에 가까운 물가가 상승하자 다시 되감는(테이퍼링) 통화량 긴축 발표와 금리인상으로 주식 채권 등 자산가격이 동반 하락하기 때문이다. 채권은 1980년대 오일쇼크와 인플레에 맞서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린 폴 볼커 연준의장 시절의 ‘채권대학살(carnage)’ 기억을 떠올리고, 주식은 연준의 매파적 통화정책 코멘트에 따라 롤러코스터 하락으로 우리의 개인(퇴직)연금을 훼손시킨다. 특히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외국인의 국내 주식매도는 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스톡옵션 먹튀와 물적분할과 같은 국내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실망, 성장과 실적에 대한 부정적 전망, ‘미중전쟁’에 따른 중국경제 악화의 후폭풍 등 이유로 외국인투자자는 현재 우리의 자산 항아리를 훼손시키고 있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후 10번째 나타난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의 경기침체 신호와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시장에서의 자금유출 우려는 모든 항아리의 위협 요소가 될 것 같다.
증권거래소 본사가 소재한 도시에 대형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가 하나도 없는 곳은 전 세계에서 부산이 유일하다. 파생상품 거래소 본사라고 수정한다면 헤지펀드 운용사가 하나도 없는 도시도 전 세계에서 부산이 유일하다. 과거 막대한 금융사고 피해를 입고, 현재 노후 준비가 부족한 국제 금융중심지 부산시민은 험난한 금융시장에서 금융이해력을 향상시켜줄 만한 투자기관이나 금융교육 기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을 오롯이 각자도생의 비장함으로 거친 금융시장의 바다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부산시민의 관점에서 국제 금융중심지란 금융기관의 고층 빌딩 숲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 일원이 빌딩 숲에서 일하고 있고, 금융중심지에 입지한 공기업과 부산시민의 자산 항아리를 점점 더 채울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서로 나누고 학습하는 커뮤니티가 활발한 금융복지 도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