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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조방 그리고 낙지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4-26 20:18:14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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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지명도 아니고 행정구역도 아닌데 지역민 사이에서만 통하는 지명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 지명으로 정착된 경우다. 부산에는 대표적으로 ‘조방’이 있다.

우동 사리를 올린 조방낙지.
부산 토박이라면 ‘조방’이 조선방직공장의 줄임말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1917년에 설립돼 1969년까지 존재했던 조선방직 공장은 무려 54개 동의 건물을 거느리고 있었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도매시장 두 곳,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터미널, 아파트 단지, 그리고 시민회관 등이 들어섰으니 그 규모가 대충 짐작 되실 거다. 흥미로운 점은 부산사람들은 ‘조선방직’의 존재는 알지만 그 구체적인 규모와 위치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른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방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거나, 택시를 타고 “조방 앞으로 가주세요”라고 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조방 앞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이 나오지만, 그 오차는 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을 수준이다.

반세기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방이라는 지명이 세대를 넘어서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건 ‘조방낙지’ 때문이다. 조방낙지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조선방직 터에 세워졌던 부산시외버스터미널 때문이다. 서부경남과 촘촘하게 연결된 시외버스 노선 덕분에 남해안 갯벌에서 잡힌 싱싱한 낙지가 조방에 도착했다. 비단 조방낙지뿐만이 아니다. 조방낙지와 더불어 낙지요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서울 무교동낙지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중심인 무교동에서 낙지요리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무교동과 지척인 남대문시장에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산물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통의 발달은 식재료에 있어 ‘산지’의 개념을 바꿔버렸다.

일단 수요가 많은 도심에 도착한 식재료는 지역 소비자의 취향과 다양한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변주를 거듭한다. 조방낙지는 그 변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방낙지가 탄생한 거리는 현재 ‘귀금속거리’로 더 유명하다. 조방낙지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조방낙지는 태어난 곳을 떠나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산 시내 곳곳에 지역의 맹주들이 생겨났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브랜드도 꽤 된다. 한쪽 손잡이만 달린 검은색 편수 프라이팬을 여전히 전통으로 고수한다. 낙지만으로 심심하니 새우를 곁들여 ‘낙새’가 탄생하고, 어차피 같은 전골 형태니 곱창과 결합해 ‘낙곱’이 탄생하고, 둘을 묶어 ‘낙곱새’가 탄생한 과정 자체도 흥미롭다.

당면에서 시작해 우동 라면 감자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사리의 변천사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먹는 방식이다. 조방낙지가 서울에서 탄생했더라면 반드시 밥을 볶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정성스럽게 낙지볶음을 완성한 다음에는 각자의 사발에 듬뿍 얹어 덮밥처럼 비벼 먹는다. “그럼 처음부터 낙지덮밥을 시키지…”라고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부산사람들이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나름 절차도 따지고 풍류도 안단 말이지.

음식은 사람을 닮는다. 조방도 사라지고 낙지도 부산 것이 아니지만 ‘조방낙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의심할 바 없는 부산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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