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처음 열린 해다. 1990년대 초반, 작고한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영화제를 기획했을 당시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제1회 BIFF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문화 불모지라던 부산은 영화의 도시가 됐다. 영화 촬영지를 발굴하고 제작을 돕는 부산영상위원회도 출범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아지면서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부산을 따라 각종 영화제가 전국에서 만들어졌다. BIFF는 수요를 창출한 문화 프로그램이다.
부산시가 북항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했을 당시에도 극소수 애호가를 위해 수천억씩 들여 공연장을 지어야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예술은 공급과 소비가 만나는 공연장이 있는 곳에 꽃피울 수 있다. 제대로 된 오페라를 볼 만한 극장다운 극장이 없어 오페라와 담을 쌓고 산 사람이 많다. 과거 문화 불모지라고 불렸던 대구를 봐도 알 수 있다. 대구는 이제 ‘오페라의 도시’로 유명하다. 2003년 개관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국내 최초 오페라 전용극장이다. 물론 공연장만 짓는다고 관객이 몰리고 문화가 활성화될 리 없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 과정을 보면 걱정이 커진다. 2008년 5월 롯데그룹이 시에 건립비용 1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하면서 사업이 시작됐으나 나머지 비용을 확보하지 못해 계속 미뤄졌다. 시가 북항재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부산항만공사(BPA)에 사업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받지 못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남기찬 전 BPA 사장이 2018년 11월 BPA가 오페라하우스 건립비용으로 80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BPA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지원비를 500억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가 “사업비 전액을 시가 부담해야 된다”며 BPA의 지원을 막았다.
공사비보다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 공연장이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건가 하는 의문이다. 제대로 된 오페라 한편 무대에 올리지 못한 도시에서 건물만 지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시가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는 2024년 개관까지 남은 시간은 2년 정도에 불과한데, 운영 주체나 개관 공연 등 결정된 게 없다. 시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2025년 개관하는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운영할 별도법인을 만들 것인지, 부산문화회관에 운영을 맡길 것인지 정리하지 않았다. 지난 7일 열린 ‘부산오페라하우스 성공 개관을 위한 포럼’에 참가한 오키 무라타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전무의 설명을 듣자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1997년 문을 연 신국립극장은 개관 4년 전 이미 운영재단을 설립하고 장르별(오페라·발레·드라마) 예술감독 3인을 임명했다고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아직 개관 공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무대에 올릴 작품을 자체 제작한다는 계획만 세웠다. 새로 만드는 창작 오페라는 작품공모, 쇼케이스 등 여러 과정을 통해 다듬어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작품 주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부산문화 발전은 물론 북항과 원도심 활성화를 이끄는 핵심문화공간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 과정을 보면서 몇 년 전 방문했던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프필하모니’가 떠올랐다. 함부르크는 부두와 창고가 있던 낡은 항구 하펜시티를 주거와 문화, 상업이 어우러진 최첨단 복합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화공간으로 계획됐던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은 13년 동안 8억4900만유로(약 1조1385억 원)를 쏟아 부어 탄생했다. 예산은 최초 계획보다 10배 더 소요됐고 개관 시기도 목표보다 7년 늦은 2017년 1월이었다. 건립과정에서 찬반 양론에 휩싸였고 함부르크시·설계사·시공사의 소송 3파전까지 펼쳐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이런 어려웠던 과정을 다 덮을 만큼 훌륭했다.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외관은 왕관 같기도 하고 범선의 돛대를 닮은 듯한 독특한 형태다. 홀 내부는 하얀색 석고판 1만 개를 밀착시켜 완벽한 음향 반사판 효과를 낸다. 이제 이곳은 함부르크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항만재개발 과정에서 탄생했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북항재개발의 성공적인 랜드마크가 되기엔 부족함이 많다. 결국 돈이 문제다. 정부는 북항재개발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만 가져갈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환원 차원에서 사업비 지원을 해야 마땅하다. 시는 개관에 급급해하지 말고 건립·운영 예산, 콘텐츠 확보 등 원활한 활용 대책을 면밀히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