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오전 8시30분. 울산 동구 현대 중공업 옛 사택 앞에 28명의 초등학생이 모여 있습니다. 새 책가방을 멘 아이들의 손에 들린 종이 가방 안에는 새 학교에서 만날 친구들에게 나눠 줄 과자 꾸러미가 담겨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파르하트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가방에는 한국어로 쓴 인사말을 붙였습니다. 파르하트는 아프가니스탄인으로 지난해 무장세력 탈레반 집권을 피해 한국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가족입니다.
미러클 작전을 통해 구조된 기여자와 그 가족 391명 중 29가구, 157명이 울산에 새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첫날, 늦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등교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물론 갈등도 있었습니다. 특별기여자의 40% 이상이 취업 관계로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에 집단 정착하다 보니 28명의 초등학생 자녀 모두 인근 초등학교로 배정됐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학부모들이 반발한 것입니다. 의견 수렴 없이 한 학교에 학생을 집중 배정한 불합리와 함께 같은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될 경우 언어 문제로 인해 학습 격차가 생겨 한국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특별기여자라고 하지만 난민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사상, 특정 종교와 문화를 비판 의식이 부족한 한국 학생들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도 컸습니다.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면 안 되며 외국인의 국적과 인종에 따라 혐오와 차별의 편향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반론까지 나오며 이견이 분분했습니다.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 따르면 혐오는 오염물로 간주되는 일군의 핵심 대상에서 시작하고, 혐오는 개인이 지니는 개념에 의해 매개되며, 그런 면에서 사회적으로 학습된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적같이 구출된 그들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었다면, 백인이었다면, 영어권 선진국의 국민이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혐오의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왜 울산 전역에 분산 수용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왜 내가 사는 이곳만을 오염시키려는 것이냐는 뜻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혐오 당한 이들은 강한 수치심을 느낍니다. 묻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파르하트가 받을 혐오와 느껴야 할 수치심은 과연 무엇입니까.
2021년 우리나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가 얼마 전 발표되었습니다. 다문화수용성이란 서로 상이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집단을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의 정도를 말합니다. 조사 결과 성인의 다문화수용성은 52.27점으로 71.39점인 청소년에 비해 낮게 나타났습니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의 다문화수용성은 하락하는 데 반해 청소년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청소년의 나이가 어릴수록 수용성의 점수는 높았습니다. 초등학생은 인종과 종교, 문화에 대해 이질적 거부감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문화학생이 같은 반이나 친구가 되는 것(교류행동의지)에 대해 93%의 학생이 불편하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던 학부모들이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습니다. 아이들은 팔레트의 여러 물감 같아서 섞이고 어울리며 자연스레 화합과 포용을 배울 것입니다.
‘다문화 쇼크’를 쓴 김무인은 ‘인종과 계급이 빠진 사회 구성원의 다문화는 이제 진정으로 축복해야 할 인류의 다양성이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순혈주의를 경계하고 계급의 사다리에서 내려서야 할 때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소녀 파르하트에게 응답합니다. 파르하트! 만나서 반가워요. 한국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