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 있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간 서진(西進)의 역사는 몇 차례가 두드러진다. 첫째는 르네상스 시대가 본격화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신항로를 개척했던 대항해의 시대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본격 서막을 알렸다. 신대륙 발견은 인류 발전에 혁신적 지평을 열게 했다. 두 번째는 대서양 동부 연안지대에 국한되던 영토를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되게 했던 18세기와 19세기 사이의 미국 서부개척사를 말한다. 금을 찾아 이동했던 이 서진의 역사도 현재의 미국을 있게 한 도전의 시간이었다. 세 번째 서진은 장안과 뤄양에서 출발해 서방에 이르렀던 실크로드로 규정되나, 이는 사막길 초원길 해상길 등으로 동서남북의 교류가 동시에 이루어졌기에 완전한 서진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어찌 됐든 인류사와 연결된 서진운동의 역사는 또 다른 이동 역사와 구분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개척정신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이달 초, 올가을에 열릴 ‘2022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관련 발표가 있었다. 을숙도,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이 전시장으로 선택됐고,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가 전시 주제로 소개됐다. 부산 서부권과 원도심을 묶는 네 곳의 전시 장소는 혹독하게 휘몰아쳤던 근대기 부산과 중첩된다. 근대를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없었던 시대 가운데, 강압적으로 요동쳤던 시대상이 물결로 은유된다. 온 세상을 오갔던 물결은 단순히 물자 운송이나 바다와 강의 생태적인 움직임을 넘어, 부산사람들의 곤고했던 지난 삶의 역사와 연동된다. ‘을숙도’라 하니, 요산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가 떠오른다. 낙동강의 그 섬은 일제 수탈의 현장이었고, 부산이 영원히 보듬고 가야 할 생명의 땅이 아닌가.
‘부산항 제1부두’의 역사는 굴욕과 저항, 그리고 평화로 상징된다. 말 소나무 고구마를 키워내며 생장의 보고였던 영도는 근대기에 들어 시대 아픔을 오롯이 끌어안으며 시민 생장을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부산항과 산복도로 사이 중간지대에 자리한 (신)초량은 일제에 맞서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며, 해방의 기쁨과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았던 곳이다. 이곳들을 동시에 떠올려 보니 비록 주류 공간은 아니었지만 부산의 근대를 이끌었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증거들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김해주 2022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은 이렇게 얘기한다. “부산의 뒷골목 이야기가 세계의 대도시와 연결되고, 교차하고,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각기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제안하고, 서로 다른 우리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단단하게 물결을 딛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마치 부산이란 도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웅대한 시대 선언과도 같다. 올가을 80여 명의 작가가 그려내고 담아내고 펼쳐갈 그곳들의 변신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필자에겐 ‘부산항 제1부두’가 유난히 와 닿는다. 1912년에 탄생된 부두는 110년의 세월 동안 질곡과도 같았던 36년을 버텼고 동시에 해방의 기쁨도 누렸다. 일제의 침략 도구로 시작됐지만 도리어 그들이 쫓겨 떠났던 곳이었다. 전쟁의 상흔을 끌어안으며 바다 위를 떠돌던 수많은 피란민을 살려내고 대한민국을 지켜냈던 피란민의 안식처이자 유엔군의 활동거점이 됐다. 또한 물류업과 수산업의 보루가 된 국가 재건의 현장이었다. 그런 곳이 비엔날레의 전시장이 된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한 컷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어느 날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속 제1부두에는 이름 모를 하얀색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 배들은 암울했던 전쟁의 배경처럼 어두운 회색으로 물든 부산항의 한 가운데에 자리했던, 붉은 십자가 마크를 선명하게 새긴 병원선들이었다. 제1부두는 그런 곳이었다. 이런 얘기가 어찌 제1부두뿐이겠는가. 부산의 원도심과 낙동강 연안에는 부산의 존립과 번영을 상징하고 담아낼 수 있는 수많은 증거와 현장이 남아있다. 다만 존재감이 약하고 그 모습이 쇠잔하여 현재의 우리 관심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인류사에 있어 서진운동의 결과는 약육강식이라는 뼈아픈 과정과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은 치유됐고 새로운 변화와 부흥으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서진운동은 고착되고 고여 있던 물꼬를 트면서 새로운 사람과 생각을 모으고 융합하는 길을 열어갔기 때문이다. 2022 부산비엔날레가 부산 서진운동의 촉발점이 될 수는 없을까? 단순히 국제행사의 아이템을 넘어, 또한 도시(재)개발의 엉뚱한 도구로 이용되는 악순환을 넘어, 시민문화의 진정한 부흥과 소외된 지역 부활의 르네상스를 이루어가는 기폭제가 되면 좋겠다. 올가을에 을숙도 제1부두 영도 초량에서 펼쳐질 2022 부산비엔날레가 부산 서진운동의 생기로운 담론이 돼 부산의 온 땅에 끊임없는 문화 부흥의 훈풍을 불어다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