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과학자를 무대 중앙에 내세우겠다”는 과학중시 공약을 실현해왔다. 백악관 집무실에 정치인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화를 내거는 것을 시작으로, 대통령 과학고문 자리인 과학기술정책실 수장에 수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에릭 랜더 MIT 교수를 임명했다. 100년 만의 팬데믹, 최대의 경제 위기, 반 기후 변화 등을 과학기술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는 새로운 정부를 맞이할 우리나라와 무관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미 동맹을 군사·안보 분야를 넘어 경제·신기술·공급망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시키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중첩되고 가속화되는 국제적 문제들은 지구촌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기에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적 위기 극복을 넘어 글로벌 어젠다 해결에 주도적으로 기여하고 선진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외교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를 거쳐, 글로벌 기술에 대한 정치학적 혁신경쟁의 패러다임과 함께 시작된 뉴내셔널라이제이션 시대는 기술 안보성 강화, 글로벌 과학체 중심, 정부의 적극적 기획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적 입지 강화와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과학기술외교 수준 향상을 위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따른 협력 대상국 맞춤형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신종감염병, 식량안보, 에너지 자원 등 각 협력 대상국의 선결 이슈에 대한 대응이나 협력 개도국의 수요 및 수준에 특화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다. 팬데믹 사태 속에서 선제적 입지를 굳힌 국내 바이오 기술을 바탕하여 백신 접종률이 낮은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백신 확대 프로그램을 한국이 가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국제 인도주의 실현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운영했던 글로벌 백신 확대 프로그램과 이태석 신부가 운영했던 남수단 의료봉사 활동을 정부 주도 협력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리고 협력국 맞춤형 과학기술 외교 특화사업 운영 및 국제협력 기술개발 사업화를 위한 국가적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과학기술, 4차 산업혁명, 원자력, 기후 변화 등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에 대한 갈망을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서에서 밝힌 바 있다. 한미 동맹 강화는 물론 공동번영을 위하여 외교 특화사업단을 구성, 국제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지속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지역별 협력국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외교 접근법이 중요하다. 아시아 지역은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친근성 등을 바탕으로 구축된 협력관계를 토대로 지속성장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EU와 G7은 문화 및 과학적 선진성 등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인문·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아프리카 지역은 빈곤감축을 우선 어젠다로 설정,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자립과 성장기반 확충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한편, 중남미는 개발협력 수요에 대응하여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난해 이상민 국회의원이 과학기술 전문가를 외무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외무공무원법’을 발의했다. 외교무대에서 전문성 부족으로 상대국과의 소통에서 소외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과학외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학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국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은 과학중심의 정책을 바탕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흔들렸던 국제적 리더십을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총체적인 국력을 활용하여 국제사회에서 비중을 극대화할 시점이며 그 시작은 과학기술 외교력 강화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