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성민규가 막았다.”

롯데 자이언츠의 홈 개막전이 열렸던 지난 8일 사직구장. 1회초 두산 베어스의 선두타자 김인태의 타구가 외야로 쭉쭉 뻗어나갔다. 롯데 우익수 조세진이 넋을 놓고 타구를 바라보는 가운데 공은 펜스 상단에 맞고 떨어졌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홈런이었을 타구가 순식간에 2루타로 바뀐 순간이다. 부산갈매기가 운집한 1루 측 관중석에서는 롯데 성민규 단장의 ‘혜안’에 대한 찬사가 터져 나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는 홈구장인 사직구장의 외야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공사’에 착수했다. 골자는 외야를 넓히고 펜스를 높여 피홈런을 줄인다는 그림이었다.

외야 펜스를 뒤로 미는 대신 홈 플레이트를 뒤쪽으로 2.884ｍ 당겼다. 그만큼 외야 담장까지의 거리가 늘었다. 좌우는 95ｍ에서 95.8ｍ로, 중앙은 118ｍ에서 120.5ｍ로 늘어났다. 여기에 펜스의 높이도 기존 4.8ｍ에 1.2ｍ를 더해 6ｍ로 높였다.

롯데 팬들은 높아진 펜스를 ‘민규 산성’이라고 부른다. 치밀한 계산 아래 축조된 ‘민규 산성’은 첫 경기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1회 초 두산 김인태의 홈런성 타구를 2루타로 막은 데 이어 3회 초에도 두산 선두타자 안재석의 홈런성 타구가 펜스에 걸려 2루타가 됐다. 이날 경기는 비록 1-6으로 졌지만, ‘민규 산성’은 그 어느 외야수보다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홈런 2개를 막았으니 말이다.

다만 롯데의 홈런도 삼킨 것은 아쉬웠다. 반격에 나선 8회 말 롯데 안치홍의 홈런성 타구가 펜스를 맞고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 주말 사직 3연전에서 두산의 홈런 2개를 막아내고, 홈런 1개를 잃었으니 롯데로서는 홈런 득실에서 +1을 기록했다. 남는 장사다.

그동안 사직구장은 홈런이 많이 나오는 타자 친화적 구장이었다. 사직구장의 8년 평균 홈런 파크팩터는 1085다. 파크팩터는 구장이 타자 타격에 미치는 성향을 나타낸다. 1000 이상은 타자 친화 구장, 1000 이하면 투수 친화 구장으로 구분된다.

롯데가 외야에 ‘민규 산성’을 쌓은 것은 과거에 비해 폭발력이 줄어든 타선과 피홈런이 많은 투수진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다. 상대적으로 장타자가 많은 상대팀의 홈런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 ‘해자(垓子)’를 깊게 팠다.

이대호의 후계자로 지목된 한동희가 아직 확실한 ‘거포 본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데다 올 시즌 은퇴하는 이대호 역시 이전에 비해 파워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 시즌 롯데 타선 중 홈런을 가장 많이 친 선수는 역시 이대호다. 하지만 19개로 20개를 넘기지 못했다. 뒤를 이어 한동희가 17개, 정훈이 14개를 기록했다. 지난 10일 경기에서 한동희가 ‘뉴 사직 1호 홈런’을 쏘아 올리기는 했지만 롯데는 당분간 ‘소총부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운드는 김진욱 최준용 이승헌 나균안 이강준 등 경험을 쌓아야 할 젊은 투수가 많다. 홈구장에서는 피홈런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자신감 있게 피칭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이 마련됐다.

또 하나. 롯데 투수진 대부분 빠른 공을 주무기로 하고 있다. 패스트볼은 양날의 검이다. 구위가 좋으면 외야에 플라이가 되지만, 제구가 되지 않으면 속구의 반발력으로 곧바로 홈런으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내야의 지휘관인 딕슨 마차도를 포기하고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진 외야수 DJ 피터스를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외야 확대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올 시즌이 끝나고난 후 ‘홈런 마진’을 정산해 봐야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야구팬의 입장에서는 또하나의 볼거리와 이로 인한 수 많은 스토링텔링 소재가 생겼다.

다만 시간과 예산의 제약으로 철망으로 땜질 공사를 하다 보니 시각적으로 세련되지 못하다. 1980년대 구덕야구장 같은 느낌이다. 내년에는 미국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에 설치된 ‘그린 몬스터(11.3ｍ)’처럼 제대로된 ‘사직의 명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