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에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CPTPP는 일본을 중심으로 환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기체결된 FTA(자유무역협정)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이 예상된다. 특히 가입 시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한 구조라, 민감 품목에 대한 시장개방 요구 그리고 환경 및 노동 분야 등에 대한 구속성 강화로 국내 수산업에 대한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러한 수산업의 시장개방 압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수입수산물 시장이 개방됐다. 2004년 칠레 이후 2012년 미국, 2015년 중국 등과의 FTA 체결에 따라 수입수산물 시장 개방은 본격화했다. 대외 시장개방에 대해 수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더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난 30년 동안 수입수산물 시장 개방에 대응해 국내 수산업의 경쟁력은 강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어획량 감소 등 생산 기반마저 붕괴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젊은 신규 인력의 유입은 거의 없고, 60대 이상의 고령화가 심화하는 등 사양산업으로까지 전락했다. 지금까지의 수산정책은 3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에 대응한 보고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당시 수산업 구조조정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제안된 대안마저 아직 이행되지 못한 것이 상당수이다.
어느 순간 수산물은 “비싼 비용을 들여 국내에서 생산하기보다는 필요한 경우 해외에서 저렴하게 수입해 먹으면 된다”라는 인식이 수산업 정책과 국가 예산을 담당하는 행정부처에 팽배해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정책 수립에 소극적이었고, 오래된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수산업의 구조조정은 더디게 진행됐고, 여전히 노동집약적이고 전통적인 1차 산업 수준으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향후 식량 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젊고 건강한 수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점진적 개선(?)이 아닌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 수산선진국에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정보통신(ICT) 등 4차 산업기술을 적용한 수산업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규모 어선을 소수의 선원이 아이패드 하나로 조종하고, 어선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경매를 한다. 수산자원 관리에서도 전자모니터링 기술을 활용해 어획량 어획노력량 부수어획 등과 같은 어업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모니터링에 인공지능(AI)을 적용, 인공지능 영상을 통해 어획량 불법어업 등을 분석하는 AI 옵서버 등 스마트 어업관리시스템이 활용된다. 양식업에서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 등이 적용돼 현실 세계에 실질적인 피해가 없도록 발생 가능한 문제를 예측하고 개선해 시장수요 예측 및 생산량 자율 조절 등 양식업의 운영 및 생산 효율성 증대를 도모한다. 그뿐만 아니라 ICT 및 AI 기술을 활용한 최적의 사료 급이 전략 등을 통해 양식업 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
이처럼 수산업은 전통적인 1차 산업이 아닌 첨단 제조업의 2차 산업으로, 나아가 3차 정보지식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수산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급속히 발전하는 세계 수산업계는 글로벌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그리고 수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수출 유통 마케팅 생물학 물리학 등은 물론 ICT AI 자동화 등에서 기회가 열리고 있어 젊은 인력이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세계 수산업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할 경우 국내 수산업은 지난 100여 년 전 자동차 산업으로 이동하지 못한 마차 산업의 서든 데스(sudden death)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현실적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지 말고, 과거의 소극적인 정책적 틀에서 벗어나 다른 산업 부문과의 오픈이노베이션, 그리고 최첨단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산정책과 연구개발(R&D)의 방향과 내용이 크게 전환돼야 한다. 가령 기존의 수산업계 틀에서 벗어나 자동차 업계와 협력해 멋진 전기어선 등을 개발해 나가야 하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조업할 수 있는 수준의 어업 자동화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스마트 양식업도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통해 사양산업이 아닌 젊고 유능한 인력이 대거 유입돼 경쟁력을 갖춘 미래 수산업 발전이 도모돼야 한다.
지난 잃어버린 30년을 되풀이하지 않는 MZ세대에 맞춘 ‘힙’한 수산업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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