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울부짖음: 아, 그놈의 인문학! (The Caltech cry: Oh, the humanities). 2003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미국 최고의 공과대학인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칼텍)은 2000년대 초부터 인문학과 예술 수업을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했다. 처음 도입된 인문학 수업에서 “여러분이 아는 송가(ode) 세 개를 말해 보라”는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은 cathode(음극), anode(양극), electrode(전극)라고 답했다고 했다. 문학에서 송가(ode)는 ‘존경이나 감동을 표현하는 서정시’를 뜻하는 말인데, 천재적인 공대 학생들에게 떠오른 ode는 ‘전극’ 같은 과학 용어뿐이었던 것이다.
과학이 대학 교육에 포함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즈음이다. 당시 ‘인문학 중심의 교육을 받던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전인적 교육의 차원’이라는 도입과정을 설명하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과학자(scientist)라는 명칭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 불리던 과학자들에게 예술가(artist)와 같이 과학을 하는 전문가라는 의미로 윌리엄 휴얼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과학은 2차대전 이후 경제적인 경쟁력, 국가안보, 국민 삶의 행복을 위한 사회의 필요에 의해 변화되고 급속히 발전하면서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과학은 학문적으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가속과정을 거쳐왔다. 그런데 이로 인해 분야 간 장벽이 높아져 가는 모순을 가져오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각자의 사일로(silo)에만 머물게 되다 보니 융합과 통합의 계절이 왔음에도 각 분야의 벽은 높기만 해졌다.
2018년 미국과학한림원은 공학한림원, 의학한림원과 공동으로 282페이지 분량의 야심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인문학과 예술을 대학의 과학 공학 의학 교육에 융합시킨 새로운 교육과정과 적절한 교수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특히, 21세기 산업에서는 과학기술과 인문·예술 분야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IBM 같은 기업이 2009년에 이미 T자형 인재, 즉 한 분야에 수직적으로 깊이 있는 역량을 갖추면서 수평적으로 광범위한 이해력을 갖는 인재를 채용하겠다고 표방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 간 융합, 즉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을 너머 인문·예술 (Arts)이 가미된 STEAM, 의학(Medicine)이 들어간 STEMM, 디자인(Design)이 들어간 SEAD, 과학기술과 예술이 융합한 ST ART (Science Technology and Art) 등의 혁신적인 다학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Hypermusic 프로젝트는 음악과 스토리텔링으로 과학의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오페라 공연의 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카이스트와 한국예술종합대학이 영상캠프를 함께 진행했고 부산에서도 AI와 사람이 함께 올리는 뮤지컬 공연이 기획되고 있다.
‘종의 기원 이후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책이며 ‘경이와 겸손을 선물해준 책’으로 알려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1962년에 출간된 책이다. 당시에는 과학자들이 각자의 협소한 연구 분야 중심으로만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가 가져올 생태계 파괴 문제를 지적하며 더 이상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봄을 인문학적인 방법으로 경고했다. 이는 저자의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재능을 융합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대중에게 전달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주목 받는 서적으로 남아있다.
계절이 바뀌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모든 종교, 예술과 과학은 같은 나무에서 자라나온 가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