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손인 그가 고민에 빠졌다. 곧 사돈 될 집안과 상견례를 앞둔 시점에서 예비 며느리의 ‘뼈 있는’ 질문이 넌지시 아들로부터 전해졌다.
정확히 연간 몇 차례의 제사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마 그것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예비 며느리가 앞으로 부닥쳐야 할 고충일 것이며, 종부가 될 딸의 짐을 가늠하고자 하는 부모의 걱정도 포함됐으리라.
그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든 제사를 지극히 모셔왔다는 그는 도대체 이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 무엇보다 혼기가 꽉 찬 장남이 드디어 마음을 잡았고, 그 역시 동기간들의 손주 자랑에 은근히 애가 탔을 터이다. 그렇다고 축소해 속임수를 쓸 일도 아니거니와, 갑자기 합설하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며, 고을 문화원장까지 지낸 이력에 쉽사리 전통을 거역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의 얼굴에서 혹여 제사 문제가 아들의 혼사에 걸림돌이 될까 봐 애타는 마음이 가득 묻어난다.
이 난제를 두고 술자리에까지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의 제사 신풍속도가 줄줄이 소개됐다. 서양 음식이나 택배 음식은 기본이고 성묘도 대신해 주고 납골당에 올릴 미니어처 ‘모형 차례상’을 만드는 제례대행업체도 생겼으며, 명절 여행객을 위해 가벼운 이동형 제기 세트가 출시된 지도 꽤 됐단다. 어느 댁에서는 제사 음식 대신 차상을 준비해 다례를 올리고 커피를 끓여 차담을 한다는 기발한 방법도 있었고, 주문 통닭만은 제사 지내기 직전에 도착하게 해 고소한 치킨 냄새로 대동단결을 만든다는 사례에는 박장대소가 터졌다.
하기야 제기에 랩을 씌우고 음식을 올려 일손을 줄여주는 시아버지 이야기도 들었으며, 지인 중에는 어려운 한문 신위를 ‘그립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하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와인을 제주로 쓰는 집도 있다. 언젠가는 한산한 공터에서 새 차 앞에 휴대전화의 돼지머리 사진을 켜놓고 고사를 지내는 일행도 보았다. 격식보다 실속을 차리는 신풍속도를 옛날 어른들이 본다면 분명 혀를 찰 일이겠다. 그러나 이제 한 자녀가 대세이고 결혼과 출산마저 줄어드는 추세이니 앞으로 홀로 지내는 제사가 무에 그리 의미 있을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명절 제례는 고려시대부터 지낸 것으로 추정되고, 이름 그대로 원래는 차를 올리는 다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 않는가.
요양원에 계시던 내 동창 엄마는 당신의 제사상엔 장미꽃 한 다발과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만 올려 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하셨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얼굴을 펴며 반색을 했다. 대부분 남의 집 며느리들이라 제사 음식 장만으로 허리가 휘어본 경험담을 익히 들은 터다. 그러니 제사상에 꼭 음식을 차려야 하는가, 라는 논제로 한동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오고 갔다.
실제로 베트남에는 제상에 꽃을 올린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는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던 칼인 난도를 진설했으며, 심지어 옛이야기에서 놀부는 제물 대신 종이에 음식 이름을 써서 올리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 부두족은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 해골을 제단에 바친다고 한다. 해골은 삶과 죽음의 중간자로서 사람과 영혼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믿는 것이다. 해골을 통해 부족의 바람과 기도를 신에게 전하고 신의 메시지를 해골을 통해 듣는 법이 그들의 제사 방식이다. 영화 ‘코코’에서도 멕시코의 제사 풍습이 자세히 소개됐는데 제단에 놓였던 해골 모양 장식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제사의 본질은 조상 숭배와 가족의 화합이다. 제사상 위에 어떤 것이 올라가더라도 고인을 기억하는 마음이 우선된다면 도량 넓은 조상님도 흔흔하지 않으실까. 새 식구를 맞을 그의 고민에 명쾌한 답은 단박에 나지 않았다. 정답도 존재하지 않으니 여러 예시를 참고해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의 꽃 상 제사 주문은 내게도 유효하다. 그러니 나의 딸이여, 훗날 내 기일에도 오직 장미꽃 한 다발만 놓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