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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구포국수와 자투리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3-15 19:31:2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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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용 완충재나 단열재로 사용되는 에어 캡(air cap)을 일명 ‘뽁뽁이’라고 한다. 누구나 뽁뽁이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손으로 하나씩 터트리거나 한꺼번에 여러 개를 터트릴 때, 묘한 쾌감이 있다. 그런데 국수공장에 가면 이보다 훨씬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

건조된 국수를 수작업으로 자르는 모습.
자연 건조한 국수를 수작업으로 잘라 포장하는 경우 자투리가 많이 생긴다. 이런 자투리는 따로 모아 가축 사육 농가로 보낸다. 가축용 사료로 섞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 한편에 쌓인 자투리를 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고무신을 신고 국수 자투리를 꼭꼭 밟았다. 국수 가닥이 뚝뚝 부러지면서 전해오는 소리와 감촉이 뽁뽁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어차피 잘게 부술수록 좋기 때문에 얼마든지 밟아도 된다”는 공장 관계자의 말에 힘입어 질릴 때까지 국수를 밟았다.

철없이 좋아하긴 했지만 국수 자투리는 누군가에게는 서글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구포 토박이들 중에 “옛날에는 국수를 젓가락으로 먹어 보는 게 소원 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포국수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한반도는 기후가 습해 밀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다. 고려시대부터 중국에서 밀을 수입했다. 국수는 경조사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남녀에게 “국수 언제 먹여줄래”라고 묻는 건 이 때문에 생긴 풍습이다. 밀 소비가 많았던 일본은 한반도에서 밀을 수탈하기 위해 대량재배가 가능한 지역을 찾았다. 황해도 사리원시 주변이 최적지로 확인됐다. 사리원에서 재배된 밀은 경의선과 경부선을 타고 구포역에 닿았다. 구포역에 도착한 밀은 일본은 물론이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전선으로 보급됐다. 통밀보다는 밀가루로 빻아서 보내야 했다. 구포에 제분공장이 들어섰다. 구포에서는 밀이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의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왔다. 값싼 밀가루가 보급되자 구포시장을 중심으로 국수공장이 우후죽순 생겼다. 구포는 국수를 말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자연조건을 갖고 있었다. 국수 건조에는 햇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바람과 습도가 더 중요하다. 햇볕이 너무 강할 때는 오히려 말리던 국수를 거두어 재운다. 밀물 때가 되면 다대포의 바닷물이 구포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바닷물이 올 때면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함께 왔다. 백양산에서 흘러내린 지표수 때문에 볕 좋은 날 구포에는 아지랑이가 선명했다. 적절한 바람과 습도에서 말린 구포국수는 오로지 자연의 힘으로 쫄깃한 탄력을 유지했다.

국수공장은 대부분 가내수공업이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국수를 뽑고, 국수를 말리고, 건조된 국수를 포장하고, 심지어 부산 시내 곳곳을 누비며 국수를 판매하는 일까지 온 가족이 매달렸다. 건조된 국수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투리는 온전한 국수를 살 형편이 못 되는 주민의 몫이었다. 자투리로 끓인 국수는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었다. 숟가락을 사용해 마시듯 먹어야 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지 못할 때 인간은 서글퍼진다. 자투리 국수로 끼니는 해결해도 국수를 국수답게 먹지 못하니 아픈 추억으로 남았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에는 삶의 흔적이 녹아있다. 지금은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국수 자투리조차 한때는 소중한 끼니였으며 구포국수의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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