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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가정음악

  • 하순봉 작곡가
  •  |   입력 : 2022-02-15 19:39:0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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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시작된 왕정제의 몰락과 전쟁의 광풍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나폴레옹의 패배로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 열강은 혁명의 재발을 막고 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재상이었던 메테르니히의 주도 아래 비밀경찰, 언론 검열 등 삼엄한 정국을 형성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소시민에겐 비정치적 퇴영적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의 사교모임인 ‘슈베르티아데’. 율리우스 슈미트 그림
낭만의 초·중기에 걸친 1815~1848년 약 30년의 이 시기를 비더마이어(Bidermeier) 시대라고 특별히 구분하기도 하는데 ‘우둔하고 고루한 사람’이란 뜻의 이 독일어는 원래는 당시의 퇴행적인 소시민적인 생활양식을 뜻하는 약간은 비하적인 의미였다. 온화함과 경건주의가 새로운 미덕과 가치로 부각됐고 문학에서는 거대한 담론이 아닌 소박한 이야기가 유행했다. 동화작가 빌헬름 하우프, 그림형제가 유명해졌고 음악에서는 대규모 음악회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살롱과 가정에서 소규모 음악회를 열게 됐다. 그 중심엔 중산층의 상징인 피아노의 급속한 보급이 있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의 피아노 제조업이 활발했는데, 참고로 빈의 피아노 제조사가 108개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잘 알 수가 있다.

작곡가들은 수요가 많은 쉽고 가벼운 피아노 소품 연탄곡 실내악을 많이 작곡했다. 이 가정음악의 악보 수요는 자연스럽게 출판사의 발전도 가져왔다. 살롱모임도 유행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의 사교모임인 슈베르티아데가 대표적이다. 반항적이고 진보적인 모임이었지만 슈베르트의 수많은 가곡과 겨울나그네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발표됐다. 베를린의 외교관인 슈테게만과 그의 부인 엘리자베트는 매주 금요일 살롱음악회를 열었는데 그 모임에는 ‘겨울나그네’의 시인인 뮐러도 포함돼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물레방앗간 아가씨의 사랑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일종의 음악극을 열었다. 몇 년 뒤 뮐러는 이날의 내용을 정리해 연작시로 발표했고, 여기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게 바로 유명한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이다. 살롱음악회는 독일 예술가곡의 탄생에 톡톡한 역할을 한 것이다.

또 합창음악이 성행했는데 법적으로 모임이 금지된 대학생들이 아카데미 합창단으로 위장해 활동하게 된다. 당시 이 합창단의 인원이 전국적으로 수 만 명이었다고 하니 그 열기가 짐작이 된다. 그러나 이 합창운동도 정치적인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독일 합창음악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다. ‘로렐라이’의 작곡가 질허는 이들을 위해 많은 합창곡을 작곡했고, 슈베르트의 ‘보리수’도 합창으로 편곡해 국민에게 많이 알렸다. 오늘날 이 노래들은 민요가 아님에도 미국 포스터의 노래들이 미국민요로 인정받는 것처럼 독일민요의 반열에 들어 있다. 그만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비더마이어 시대 작곡가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듯 행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시대에 저항했고 그런 반영이 실내악 피아노 소품 합창 가곡들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가정음악은 단순히 퇴행적인 음악이 아닌 시대에 잘 적응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우리 FM 방송에서도 사용하는 가정음악이란 용어는 이 비더마이어 시대에서 유래된 것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중산층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대부분의 아이가 피아노 교습을 받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다들 피아노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악기를 연주하는 그런 아름다운 가정음악을 꿈꾸지 않았을까? 코로나와 추위로 위축된 이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비더마이어 시대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삶이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걸 바라지 않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음악을 즐기는 그런 ‘작은 행복(Petit Bonheur)’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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