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 갖춰진 것이 별로 없던 조교수 시절에는 해외 공동연구자의 실험실을 주로 이용했다. 처음 받은 대학원생 2명과 찾은 곳은 소설 ‘설국(雪國)’의 배경이 된 지역이었다. 그곳의 겨울 아침은 무척이나 신비스러웠다. 분주한 도심 거리도 자고 나면 어느새 눈 덮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마치 망쳐버린 스케치북의 그림을 넘기고 매일 새로운 도화지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반면 우리의 실험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시간당 비싼 부대비용이 소모되는 실험이라 학생들과 매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실험을 했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기대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그날은 저녁도 굶어가며 실험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험조건을 이리저리 바꿔도 모니터는 야속하게 잡음만 보여줬다. 밤늦도록 신호가 나오지 않자 결국 학생들과 실험실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실험실 밖은 어둠 속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굵은 눈덩이가 뺨에 부딪히면 아프기까지 했다. 며칠 동안 측정한 암실의 잡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은 밤의 어둠 속에서 이미 반쯤 눈에 잠겨가고 있었다. 눈은 어느새 발목까지 쌓여가고 눈보라는 더욱 세차지고 있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지난 시간을 눈으로 뒤덮는 설국의 마법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가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자정을 넘긴 시간, 우리는 눈을 헤치며 그 불빛에 이끌려갔다.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라면 가게였다. 육수와 면을 삶는 주방에서 만들어낸 온기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에 들어가 머리에 쌓인 눈을 터는 것조차 잊고 라면을 기다렸다. 주방장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금방 세 그릇의 라면을 내놓았다. 얼어붙은 두 손으로 그릇 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뜨끈한 라면 국물과 한 젓가락의 면을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간 걸쭉한 육수의 영양이 허기진 뱃속과 지친 혈관 속으로 삼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라면광고 속 한 장면처럼 서로의 놀란 얼굴을 쳐다보며 한동안 멈춰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보라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눈의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 중심에서 또 다른 마법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음날 모두 늦잠을 잤다. 그날은 날씨도 좋았다. 맑은 하늘 아래 내리쬐는 햇볕에 밤새 쌓여있던 눈들이 물에 젖은 솜사탕처럼 녹아가고 있었다. 눈이 녹아 만들어진 거리 곳곳의 작은 웅덩이 속으로 하늘이 보였다. 비록 실험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지만 한 발짝 떨어진 마음으로 실험 장치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동안 시도한 결과들을 검토한 후 마지막으로 조건 하나를 바꾸기로 했다. 측정 장치들을 재설정하고 실험실 불을 끈 뒤 고요하게 신호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모두 밤에 먹은 라면을 떠올렸던 것 같다. 눈보라 치는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심야식당의 라면 한 그릇….
순간! 갑자기 모니터 화면에 신호가 나타났다. 이론적으로 예상한 바로 그 진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두 동공이 커진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라면을 먹던 그 순간처럼.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한참을 가다 보면 도약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끊어진 길이나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은 곳처럼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날개 같은 재능을 지니지 못한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간혹 날개를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우유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후 깨달음을 얻었다는 싯다르타의 일화처럼 과학자가 발견이나 영감을 얻는 과정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경험이 존재한다.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뒤에 찾아온 과학적 깨달음의 순간은 길가에 버려진 돌덩이를 우연히 발견하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숨결을 느끼며 온몸이 전율하는 ‘만남’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