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 향토사학자 고 최해군 선생의 역저 ‘부산의 맥’ 에서는 흥미로운 호랑이 이야기가 나온다. 호랑이 ‘범’ 자를 붙인 부산의 지역 이름을 소개하는데 필자가 나고 자란 부산 좌천동 인근의 범일동 범천동 범내골 등이 그것이다. 범내는 한자로 호천(虎川) 또는 범천(凡川)이 된다. 범내골 마을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년)에 동평면 범천1리, 범천2리로 기록돼 있다. 근대화 이전 부산포로 가기 위해서는 동래와 하마정을 거쳐 서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 범내골이란 명칭의 마을은 주변 산세가 험해 호랑이가 간혹 출몰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범내골’이라고 한다. 이곳이 ‘K- 문화’의 상징인 “범 내려온다” 의 원조인 듯 상상해 본다.
‘동물의 왕’ 호랑이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사의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기쁨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친숙한 존재였다. 호랑이 마을인 범일동 범천동의 조방 앞(옛 조선방직 터) 일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전통시장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모여 있다. 한복부터 혼수 귀금속 기계 의료 의복 신발 식품 식물 인테리어소품 사진현상소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한때 결혼예식장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알고 보면 ‘K-문화’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임인년을 맞이해 이곳이 호랑이 전통문화와 이야기가 콘텐츠 상품이 되고 영세사업자 간 서로 협업하고 협동하는 경제활동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호랑이 문화도시와 기업플랫폼 공간으로 부활해 ‘무서운 호랑이’ 같은 코로나 팬데믹을 잘 이겨내고 우리에게 든든한 ‘수호신 호랑이’, 해학과 기쁨의 웃음을 주는 ‘부산 호랑이’가 돼주길 기대해 본다.
새해는 밝았지만 여러 어려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지역경제 위기 물가 상승 집값 폭등 청년 일자리 부족 등으로 서로에게 신년 덕담마저 주고받는 사람이 드물다. 최근 지역상권의 폐업 광고를 자주 접한다. ‘그동안 성원에 감사합니다’ ‘폐업 창고 대개방’ 등의 광고 전단지나 현수막이 마음 아프게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작년까지 백신 접종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코로나19도 이른 시간 안에 극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상황은 어려워졌고 묵묵히 참고 견뎌 온 시민은 이제 거의 한계 상황에 있는 듯하다. 특히 지역 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불안감은 심각하다.
부산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경제활동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 그래서 이들이 지역 경제발전의 주역이 돼야 한다. 작지만 강한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1인당 평균 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잘 사는 도시에 대기업과 첨단산업 단지가 없는 곳이 참 많다. 정밀기계 산업부품 등 전통 제조업 기업과 지역에서 협업하는 다양한 협동조합, 마을기업과 오래된 노포, 와인 미술 음악 오페라 등을 상품화한 사회적기업 등이 재미있게 기업 활동을 하고 지역에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최근 미국의 세계적인 대기업 경영자들도 주주 이익이 최우선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선언도 했다. 그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지역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일반 시민이 체감하고 스스로 행복한 경제발전의 길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공정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 일반화돼가고 있다.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의 중소기업과 전통시장은 이런 세계적인 기업문화의 변화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부산다움’을 찾아 미래를 준비할 때 지난 역사와 문화가 지역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2021년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인에게 K-문화의 힘을 마음껏 알리고 자랑스러운 성과를 만들어 낸 역사적 순간이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BTS’ 등으로 대표되는 K-문화의 자랑스러운 성과가 어려움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됐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 속담이 있다. 호랑이 마을의 기상으로 2022년 임인년 새해는 부산 호랑이로 비상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