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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의학과 자본주의 공조, 슈퍼바디 탄생 /김인선

자본주의와 노예제 공모, 미국 의학 눈부시게 도약

아프리카선 악행 여전해…인종주의, 팬데믹 주요인

  • 김인선 부산대 사학과 강사
  •  |   입력 : 2022-01-19 19:21:01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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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공포가 세계를 뒤덮은 2020년 4월 3일 프랑스 TV 토론에서 파리 코생병원 집중치료 실장 장-폴 미라와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연구부장 카미유 로슈는 아프리카에서 코로나 치료제 임상시험을 하자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인을 기니피그 삼자는 이 주장을 황당한 돌출발언이라 생각하기엔 임상연구에서 인종차별의 역사가 짧지 않다. 왜 어떤 몸은 다른 몸에 비해 열등한가? 무엇이 특정 몸의 대상화를 용인하게 만드는가?

역사가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가 수행한 19세기 노예제와 부인과의 기원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오언스는 미국 의학 교과서에서 선구적 인물로 칭송받는 의사들이 실은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실험적인 제왕 절개, 난소 절제술, 산과 누공술을 연습해 명성을 쌓았다고 폭로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부인과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리언 심스는 여성 노예 9명을 수술 재료 삼아 5년간 생식 관련 수술을 실습했다. 노예 애너카의 경우 총 30차례 마취 없이 실험적인 수술을 견뎌야 했다. 여성 노예 대상 생체실험 덕분에 경력 10년 차에 심스는 유럽왕실 여성들을 치료해 달라는 초청장을 수도 없이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의료 기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노예제 시기 살아 있는 노예 여성의 몸은 부인과 의술을 익히는 실습도구가 되었고 죽은 노예의 몸은 병든 생식기를 활용해 부인과 연구 및 교육자료로 쓰였음을 미국 의학 교과서가 입증한다.

심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미국 의학은 노예제 및 자본주의와 공모하여 눈부시게 도약했다. 1808년 아프리카 노예 수입이 공식 금지되자 남부는 노예공급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노예주는 생식력 있는 노예 여성을 의사들에게 임상검체로 제공했고 그 대가로 노예 번식과 노예제 존속의 이익을 챙겼다. 의학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인 의학은 과학의 이름으로 임상검체가 된 흑인 노예들을 ‘의료용 슈퍼바디’라 명명하며 이들이 유인원에 가깝기에 부인과 실험에 백인 여성보다 ‘훨씬 적합하다’, 성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생식기 질환이 백인 여성보다 빈번하다 따위의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을 쏟아냈다. 인종주의가 과학적 정설로 둔갑했고 비윤리적 의료행위가 인종주의의 미명 아래 정당화되었다. 오늘날도 미국 흑인은 여전히 ‘슈퍼바디’로 인식되고 있고 이런 인종적 편견 탓에 흑인 사회의 의료 불신이 상당히 심각하다.

의학이 인종주의를 활용해 잇속을 챙긴 것은 200년 전 옛이야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 지구적 공포를 몰고 온 오미크론 변이가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유를 백신 분배의 불평등으로 설명한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작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56%의 사람들이 최소 1회 백신 접종을 받았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의 접종률이 50% 이상인데 유독 아프리카는 10%에 불과한 상황이다.

팬데믹 종식의 관건이 아프리카에 백신을 충분히 공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지난 연말 남아공 정부는 존슨앤드존슨과 화이자에 코로나19 백신 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여론조사 결과는 남아공은 물론 14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백신 회의론과 노골적인 백신에 대한 적대감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데, 그 기저에는 식민주의 지배 아래 서구의 착취와 의학의 학대가 남긴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 20세기 초 독일 제국은 현재 나미비아 주민을 대상으로 천연두, 발진티푸스, 결핵균을 감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소나 아편을 고의로 주입했다. 화이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나이지리아 어린이를 상대로 신약개발을 하다가 아이들이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위로금을 지급한 사건이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아프리카인을 상대로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임상연구를 수행하며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악행이 현재 아프리카인이 백인 의학을 불신하고 백신 접종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주된 이유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이것이 팬데믹 종식의 기회가 될지, 슈퍼변이의 서막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수백 년간 의학과 자본주의의 긴밀한 공조가 조장한 인종주의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장기화의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작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특정한 몸이 다른 몸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받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는 모두 인위적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내재한 채 만들어진 것이므로 왜 특정한 몸이 표준으로 제시되고 다른 몸들은 그 표준에 견주어 제시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인간은 어떤 몸들을 열등하다고 낙인찍고 죽일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가? 인종주의를 직시하지 않는 한 코로나19와 인류의 전쟁 종식은 요원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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