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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최태호의 와인 한 잔] 기다리는 설렘이 없는 세상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2-01-18 19:44:3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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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숨겨진 차원’에서 사람의 공간은 인간관계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친밀한 거리’(0~46㎝)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관계. ‘개인적 거리’(46~120㎝)는 타인에게서 침범받고 싶지 않은 물리적 공간으로, 친구나 지인처럼 대화하기 좋은 관계. ‘사회적 거리’(120~360㎝)는 사회생활을 할 때 업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거리, 제3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으로 공공생활에 필요한 관계. ‘공적인 거리’(360㎝ 이상)는 공연 등에서 관객과 떨어져 있는 거리로 연설이나 강연을 할 때 필요한 관계이다.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슬로베니아의 도시 피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인간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진화해 왔다. 진화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손을 대신한 도구, 발을 대신한 바퀴, 머리를 대신한 컴퓨터처럼 다양한 연장물(延長物, extension)을 만들어 왔다. 시간이나 공간의 경험을 연장한 것이 언어이고, 언어의 연장물이 문자로 된 기록이다. 이렇게 모인 것이 문화이며, 이 모든 것들이 발현되는 장소가 도시이고, 도시는 이런 문화를 표현하는 공간이다.

시간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시간의 개념이 바뀐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최근의 인기 있는 노래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전주가 거의 없다. 기다려 주지 않으니 곡을 시작하자마자 가사를 쳐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플랫폼은 고객의 시간을 줄여주는 데만 집중한다. 기다리는 설렘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다.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스마트폰과 도시의 비대면 시스템, 감시 노동에 갇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을 소통본능을 잃은 외로운 생쥐에 비유했다. “지속적인 외로움은 물론 단 2주 정도의 고립도 개인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외로움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외로움과 고립감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를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로 내몬다는 것이다.

초연결의 시대, 우리를 이렇게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올 고립의 시대. 소외와 배제를 일삼는 삶이 아닌, 고립 사회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진지함과 기상천외함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기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좀 더 사람 냄새가 나고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이들이 세상을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런 인재를 만드는데 필요한 덕목이 역사와 인문학 교육이다. 와인 역시 역사와 인문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와인은 우아하고 깊이가 있어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야 와인의 섬세함과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여운이 길게 남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 좋고 친구처럼 토닥이며 위로를 준다. 세계 최연소 마스터 소믈리에 ‘뱅상 가스니에’는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와인과 음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식사를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잘 고른 와인 한잔이 단순한 만남조차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외롭고 힘든 시절이지만 미소와 좋은 와인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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