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신학기부터 부산의 모든 일반고에서 고교학점제가 시범 시행된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교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부산시교육청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학생과 교사가 변하는 제도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자 시범 시행을 결정했다. 고교학점제는 수업 기준인 학점부터 수업 방식, 학생과 교사가 활동하는 공간 등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혁신이다. 이처럼 고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전환한다면 기대와 설렘에 부풀어야 하지만 반대로 우려와 불안의 목소리가 만만찮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불거졌을 뿐만 아니라 현행 대입제도와의 불일치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고교학점제에 따른 교사 및 교재 확보, 수업량 및 평가제의 적정성 등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은 최대 95개다. 이를 위해선 교사 수가 지금보다 1.5배 더 필요하다. 시교육청은 정원 외 기간제 교사 및 외부강사 채용, 순회교사제 활용, 대학에 관련 수업 개설 등을 통해 교사 수급 문제를 해결하겠다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학교 또는 지역 간 격차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2025년 전면 도입과 함께 고교 3년간 총 192학점을 졸업 기준으로 삼으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해서도 하루 평균 수업량이 6시간을 초과할 정도로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현행 대입제도와의 공존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고교학점제가 정착하려면 수능 중심의 정시를 줄이고 학교 생활과 성적 등이 중요한 수시를 대폭 늘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입제도의 공정성 강화를 명목으로 오히려 정시 비율을 확대한 것이 교육부다. 고교학점제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와 관련된 주요 과목보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는 것이 정상이지만, 대입제도가 유지될 경우 수능 대비 수업이 이어져 고교학점제 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입 개편안은 2024년에야 나올 예정이다. 이는 교육부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사정이 이러니 교육 현장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학생들이 선택할 과목은 늘어나는데 정작 교재는 물론 가르칠 인력이 부족하다”는 교사나, “대입제도가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아이들만 피해를 보게된다”는 학부모의 지적은 너무나 당연하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교육 1호 공약이다. 대입에 목을 매는 고교 교육의 현실을 타개하려면 대입제도 개편안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앞서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유효한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교육청도 선제적 시범 실시를 결정한 만큼 여러 문제점을 수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