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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대문자 인간 /강이라

  • 강이라 소설가
  •  |   입력 : 2022-01-09 19:54:0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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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마다 갱신되는 다짐이 있습니다. ‘대문자 인간이 되자’입니다. 생각과 시선에 차별과 경계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만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아버지는 개인택시 영업을 갓 시작한 상태였고 무리해서 장만한 첫 집의 대출금과 이자를 갚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운행을 나가셨습니다. 어느 밤 골목길을 빠져나가던 아버지의 택시에 누군가 부딪혀쓰러졌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그 사람은 말없이 일어서더니 괜찮다는 몸짓을 보였습니다. 그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온 뒤 마음이 쓰였던 아버지는 다음 날 저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작은 셋방에는 부부와 딸 하나,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딸은 제 또래였습니다. 아버지는 누워 있는 그 아저씨에게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냐고 거푸 물었지만 아저씨와 아줌마는 말 대신 허공에 팔을 들어 지휘하듯 흔들며 연신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말이 아닌 웅얼거림이었습니다.

벙어리인가 봐. 무심결에 내뱉은 저의 혼잣말에 아버지와 여자애의 낯빛이 변했습니다. 부부는 딸을 불러 그들과 아빠 사이에 앉혔습니다. 우리 부부는 듣지 못합니다. 딸아이는 정상입니다. 딸에게 말해주세요. 여자애는 제 부모의 수화를 음성언어로 통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에 누구의 과실이 더 큰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치료비나 약값으로 얼마를 생각하는지 등등의 말들을 통역하는 여자애의 표정은 먹구름 낀 듯 어두웠고 어조는 높낮이 없이 건조했습니다.

그 후 몇 번 더 그 집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여자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통역을 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집을 나올 때 따라 나온 여자애가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수어로 무슨 말을 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원망의 말이었겠지요.

농인을 부모로 둔 건청인 자녀를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라고 합니다. 코다인 이길보라 감독이 연출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 농인 부모와 코다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건청인인 감독의 남동생이 농인 아버지를 대신해 까다로운 전화 통화를 맡아 하며 부모와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합니다. 옮겨야 할 말들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요. 그때 그 여자애도 열 살 정도의 어린 코다였고 교통사고에 따른 어른들의 불편한 시시비비를 묵묵히 수어와 음성언어, 두 언어로 통역했습니다. 벙어린가 봐. 어린 제가 뱉은 말에 악의는 없었다 해도 어린 그 애가 느꼈을 모멸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는 낯이 뜨겁습니다.

성인이 되어 농아인협회에서 운영하는 수화 교실에 잠깐 다녔습니다. 수화는 손으로 나누는 대화이기에 자음과 모음을 비롯해 모든 단어를 손으로 하나하나 익히고 외워야 합니다. 언어 공부가 그렇듯 수화 또한 쉽지 않았고 몇 달 만에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수어 자모와 기초적인 인사말 정도만 손의 기억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Deaf와 deaf는 청각장애인인 농인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Deaf는 언어적·문화적으로 소수집단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deaf는 병리적 농인을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어린 저는 소문자 d의 편협한 시선으로 그 애와 농인 부모에게 무례를 범했던 것입니다. 저는 대문자 D의 사고와 이해 아래 인간 존엄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했습니다. 여기서 대문자의 영역은 포용과 이해의 너른 땅으로 젠더 장애 세대 성적 지향 등에 있어 단수나 소수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가하지 않는 곳입니다. 이것이 제가 매년 대문자 인간을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때 그 여자애에게 늦었지만 수어로 전합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이마에 댄 후 손가락을 펴며 왼손등 위로 내립니다. 미안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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