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산 서면에 있는 한 파스타 가게의 서빙 일이었다. 점장은 5분가량 면담하더니 오늘부터 바로 일을 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반나절 남짓 일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반. 취객이 뒤섞인 만원버스를 탄 귀갓길이 무척 고단했지만 그럭저럭 기분은 좋았다. 어쨌든 돈 버는 일을 처음 시작했다는 뿌듯함이었다.
일을 한 지 며칠 뒤에야 하루 일당이 1만 원이라고 들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조금 넘게 일하니 시급은 당시 최저시급인 2100원이 안 됐다. 세금 떼고 일당 1만 원이면 대충 맞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하며 넘어갔지만, 주휴수당이나 연 500만 원 이하의 근로소득에는 세금이 없었다는 건 훨씬 나중에야 안 일이다. 그땐 다른 아르바이트생 시급도 대부분 최저시급인 2000원 언저리에 있었다. 최저임금은 곧 청년들의 노동에 대해 시장이 지불하는 시장(市場)가격이었다.
청년 노동의 시장가격인 최저임금은 누가 정하는 걸까.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 의결한 최저임금안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이 결정한다(법제8조 제1항). 최저임금을 사실상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되는데(법 제14조 제1항), 노사 양측 위원이 동수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최저임금안으로 결정되고 있다. 즉 최저임금은 사실상 정부가 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관철이 가능하므로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법 개정이 필요 없으니 국회의 협력이 없어도 되고, 특별히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정치적 부담만 지면 된다.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한 축으로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인상하겠다고 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만이 아니라 유승민 심상정 후보도 동일하게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인상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보수후보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도 2020년까지 1만 원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한마디로 주요 대선후보 5인 전원이 임기 내에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적어도 2022년까지는 최저임금 1만 원이 당연히 될 줄 알았지만 역시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의 최저시급은 9160원이다. 아직도 10%가량이나 더 올라야 1만 원이 가능해진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이라고는 하지만 문 대통령과 유승민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인 2019년 8월에 결정하는 2020년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와 무관하게 공약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급기야 이번 대선의 유력 보수야당 후보는 최저임금제도를 “비현실적 제도”라 지칭하며 “다 철폐해 나가겠다”고까지 말했다. 최저임금 때문에 일하고 싶은데 못하는 근로자가 생겨나고, 기업도 사람을 고용해 생산을 하려는데 못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략적인 취지였다. 최저임금이 시장경제 원리를 거스른다는 기존 경영계의 논리와 같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최저임금을 동결할 수는 있겠지만 최저임금제를 “철폐”하기는 어렵다. 최저임금제 시행은 헌법상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헌법 제32조 제1항). 따라서 국회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개헌을 하지 않는 한 최저임금법을 없앨 수는 없다. 더구나 전 세계 주요 국가 대부분이 시행하는 최저임금제를 없애 노동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 헌법은 최저임금제 시행을 강제했을까.
헌법은 ‘근로’를 모든 국민의 권리로 보장하고 법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며(제32조 제1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제32조 제3항). 즉 최저임금 등 근로조건의 기준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준”이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회든 최저임금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하한 기준이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곧 아르바이트 청년과 비숙련 노동자들의 노동 가격이기도 하다. 이들의 2021년 노동의 가격은 시급 8720원, 월급 182만 원이다. 세금과 4대 보험료를 고려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160만 원 남짓이다.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17년에는 135만 원으로 47만 원이 더 적었다. 실수령액은 130만 원이 안 될 것이다. 160만 원과 130만 원 중 어느 쪽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존엄을 보장하는, 청년과 비숙련 노동자들의 적정 임금에 가까울까. 아니면 이조차도 많으니 아예 최저임금을 철폐해야 하는 걸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