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2021년 올해는 오늘날 중국을 만든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기억들이 소환된 특별한 한 해였다. 신해혁명 발발 110주년이었으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었다. 신해혁명으로 1912년 수립된 중화민국은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정이었고 1949년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40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중국 대륙에서 혁명이 두 번이나 발생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40년 전인 1981년 중국공산당은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 채택을 통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화한다. 역사 재평가의 성격을 가진 이 결의문으로 그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배해온 마오쩌둥(毛澤東)의 계급투쟁 노선이 완전히 폐기되었다. 무력으로 체제를 바꾸는 혁명은 아니었으나 미국의 저명한 연구자 해리 하딩이 중국의 ‘2차 혁명’으로 칭했을 만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역시 중국 체제의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 놓았다.
내가 처음으로 중국 대륙에 간 것은 개혁개방이 진행 중이던 1992년 6월이었다. 당시는 천안문 사건의 여파로 중국 사회가 다소 위축됐다가 1992년 초 덩샤오핑이 다시 개혁개방 확대를 독려하면서 활기를 되찾아가던 시점이었다. 20대였으므로 나는 뜨거운 여름날의 베이징에서 많은 중국의 청년들을 친구로 사귀었다. 그 가운데 리무진 택시를 몰던 후(胡) 선생도 있었다. 그는 대학을 몇 년 전에 졸업하고 외국인 전용 리무진 택시를 몰았는데 그건 순전히 다른 직업에 비해 소득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어를 잘했으며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다른 중국인처럼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나를 이상한 외국인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그가 손수 빚어 갖다준 교자만두를 보고, 중국을 이해하려는 외국인 친구에 대한 작은 경의임을 알았다. 그는 착실히 돈을 모아 기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이후 소식은 끊어졌지만 명민한 사람이었던 만큼 분명히 개혁개방의 흐름을 잘 타고 기업가가 됐을 것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은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이후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덩샤오핑의 후계자들도 이러한 노선을 이어갔다. 특히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경제가 세계경제로 완전히 통합되는 계기였다. 이후 중국에 대한 해외기업의 투자가 더욱 활성화됐고 중국기업도 해외로 뻗어 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권력형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시장화의 논리가 관철되는 가운데 경제 사회적 불평등도 심화됐다. 개혁개방이 확대될수록 중국 사회의 다양한 저항의 목소리도 커졌다.
내가 중국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은 장쩌민 집권 말기였던 2000년 9월이었다. 진흙탕 바닥이던 베이징 변두리에 갑자기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서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지역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았다. 올림픽 유치를 경축하는 시민으로 베이징 시내가 가득 찰 무렵 나는 또 다른 중국 친구를 사귀었다. 역시 후(胡) 씨 성을 가진 그는 허난(河南) 출신의 농민공(農民工)이었다. 우리 집 중고 세탁기를 순식간에 고쳐줄 정도로 뛰어난 숙련공이었던 그는 늘 신문을 읽고 국제정세에 대해 나와 대화하기를 원했다. 중국의 혁명사에도 정통해서 내겐 아주 좋은 중국현대사 선생님이던 그에게 초대를 받았던 어느 겨울날, 그의 옹색한 집 핑팡(平房)에서 술기운에 용기를 낸 그의 울분 어린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 달여 전 개최된 중국공산당 19기6중전회는 ‘당의 백년 분투의 중대 성과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를 채택했다. 2012년 이후 시진핑의 ‘중국특색사회주의 신시대 창설’ 부분이 역사 평가에서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한 것만 봐도 이제 시진핑 노선의 승리는 분명해졌다. 권력분산(分權)에 입각한 민간 주도의 경제사회정책 그리고 미국과의 타협에 기초한 현상유지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한 덩샤오핑 노선과는 달리 시진핑 노선은 권력집중(集權)을 통해 국가주도의 경제사회정책과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현상타파적인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는 노선이다. 이제 중국공산당은 중국이 오랫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혁명에 승리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가능해졌다는 서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덕분에 내 친구 후(胡) 선생들은 모두 행복해졌을까? 세상 이치를 아직도 정확히 모르고 흔들리는 나약한 중년이지만, 내게 행복했던 기억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오늘 중국은 여전히 그러한지 솔직히 중국 친구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아마 중국 친구들도 내가 행복한지 묻고 싶겠지만…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