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응용미술학을 전공한 분이 있다. 유화로 인물화를 그린다.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 ‘어른 아이’라는 테마로 그린 새해 달력과 에코백을 선물 받았다. 감사한 마음에 점심이나 대접할까 했는데 도리어 점심까지 거하게 대접을 받았다. 작가님과 아쉬운 이별을 고할 때쯤 캐나다에 있는 딸이 하면 좋겠다며 1만 원짜리 달고나 세트를 사고 싶다고 했다. “너도 하나 사”라는 말에 나도 슬쩍 지갑을 열었다. “3개나 샀는데 3만 원 다 받으시게요?” 내 말에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짓더니 1000원을 깎아 주셨다. “누름판과 달고나 밑판에 키친타월이나 화장 솜으로 기름을 꼭 발라야 돼. 안 그러면 달라붙거든. 내용물을 누름판으로 아기 다루듯 2, 3 번 톡톡 두드려 준 뒤 틀 모양을 찍으면 근사한 달고나가 완성된단 말이지. 소다는 적당하게, 알았지!” 아저씨는 유튜브에도 없는 비법이라며 장황하게 설명을 하셨다.

동판국자, 누름판, 달고나 밑판, 달고나 끌개, 별이며 자동차, 하트 등 다양한 틀 모양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쪽자를 해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만화방 아저씨 다음으로 자주 만났던 사람이 쪽자 할머니였다.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누름판과 밑판에 기름을 두른다. 누름판으로 2, 3번 톡톡 두드려 준 뒤 별 모양 틀을 놓고 누름판을 누른다. 내용물이 사라졌다. 누름판에 딱 붙어 버린 것이다.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생각보다 어렵다. 유튜브를 틀어 놓고 달고나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한다. 실수 연발, 실패 연발이다. 여러 번 연습 끝에 별이 별 같았다. 별스럽지도 않은 일에 웃음이 났다.

그때도 나는 별 모양 쪽자가 좋았다. 먼저 핀으로 선을 따라 별 전체를 스윽 한 번 긁어준다. 그러고 나면 이젠 핀으로 별의 구석구석을 콕콕 찔러준다. 별 주변을 손으로 조금씩 떼어낸다. 별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거의 다 왔다. 오로지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뽑기빵, 설탕빵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려있다. 별의 순간이다.(Sternstunde 슈테른슈툰데- 미래에 운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 행동 또는 사건에 대한 은유이다) 별을 무사히 지킨다면 곧, 꿈의 순간을 만날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별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이대로 꿈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 떨어져 나간 별의 한 조각을 침으로 살짝 붙인다. 쪽자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내가 아는 신들을 총동원한다.

쪽자 할머니는 손바닥 위의 내 별을 이리저리 살펴보신다. 음…하고 뜸을 들이신다. “할매, 밥 다 탄다.” 조르는 소리에 합격! 하고 외친다. 흔쾌히 맛있는 설탕빵을 만들어 주신다. 입안에서 설탕빵의 달콤함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쪽자 할머니는 나의 만행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해주신 거였다. 나 말고 다른 아이들도 봐주셨을 것이다. 쪽자 할머니는 분명, 반짝이는 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이 아이의 세계였다면 지금은 어른의 세계인 걸까? 뭐 하나 쉬운 게 없고 봐주는 것이 없다. 실수는 완벽해지는데 있어 걸림돌일 뿐이다. 허물은 덮어주는 거라기보다는 어떻게든 파헤쳐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떨어진 별 조각 하나를 침으로 붙이는 것 따윈 작은 속임수일지 모른다. 옛날에 존재했던 반짝이는 별의 마음은, 완급 조절을 못 해 산산조각이 나버린 쪽자별처럼 흩어져 버렸다. 소다는 적당하게! 라는 소중한 마법의 주문을 잊어버려, 세상은 쓴맛으로 부풀어 질대로 부풀어진 것 같다.

작가님의 말처럼 어쩌면 나도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어른 아이’의 경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다. 세상이 조금은, 달고나처럼 달콤해졌으면 좋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