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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학벌 피라미드 사회의 비극 /구시영

대학 이름이 계급인 한국, 청년 경제고통지수 최악

지방대 출신·고졸 청년층, 취·창업 인프라도 불평등…대학서열 체계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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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취업·창업난으로 실의에 빠지거나 ‘영끌’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빚만 짊어지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더욱이 흙수저 금수저 같은 수저론과 ‘부모 찬스’로 대변되는 불평등·불공정은 청년층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도 거의 끊어진 듯하다. 최근 통계청 조사가 그렇다. 즉, 열심히 노력하면 본인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사람이 19세 이상 성인 10명 중 2.5명에 그쳤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신분상승이 어렵다는 뜻이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과거 한동안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요즘 그 표현을 잘못 썼다가는 ‘꼰대’ 소리를 듣기 쉽다. 어쩌면 뺨 맞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청년의 현실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얼마전 한국경제연구원이 우리나라 세대별 ‘체감 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자료가 그걸 웅변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청년층의 경제고통지수가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하고 2015년 집계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는 결과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개인사업자 폐업률, 부채 비율 및 증가속도 등 모든 지표에서 최고치를 나타낸 것이다. 청년층의 경제적 고통이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 중에서도 지방대 출신이나 고졸 청년층의 고통은 훨씬 더하다. ‘지잡대’ 등의 모멸적 용어 속에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지방대를 둘러싼 불공정 문제를 다룬 신간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에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출신 대학의 간판에 따라 취업은 물론 일자리의 질 임금 결혼 인생이 달라진다는 인식과 공포감이 만연한 곳이 바로 한국사회다. 그러니 어떻게든 ‘인(in)서울’ 을 하려거나 서울 가까운 대학에 가려고 몇 년째 입시에 매달리는 수험생들이 적지 않다. 지역 국립대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하는 비율이 해마다 증가해 80%선을 훌쩍 넘어선 것도 그와 관련이 깊다. 심지어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스펙이란 반응까지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의 근원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학벌 피라미드 구조와 서울(수도권) 중심주의에 있다.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블라인드 채용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출신 대학(수도권 캠퍼스)에 대한 ‘분교’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것도 학벌사회의 한 단면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비단 그곳뿐 아니다. 서울 유명 대학들의 본원 캠퍼스와 지역 캠퍼스 사이에 출신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출신 귀화 역사학자인 박노자 교수의 비판을 되새길만 하다. 한국과 같이 학벌이 모든 사회생활의 중심, 즉 사회적 존재와 권력의 중심이 되는 사회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역대 한국 정부의 고위직에 교수와 서울대 출신 비율이 가장 높은 점을 꼽는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2016년 20대 총선 당선자 300명(학사 기준) 중 수도권 대학 출신이 68%에 이른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는 보수·진보 어느 세력이 정권을 잡든 학벌 엘리트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고, 학벌주의는 한국에서 변함없는 초당파적 현상이란 걸 말해준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유력 후보들의 2030세대에 대한 구애 경쟁도 뜨겁다. 주요 승부처인 청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저마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보다 각종 지원금이나 세제 혜택 등과 같이 돈만 쏟아붓는 식의 선심성 공약과 정책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게 해서는 청년층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는커녕 외면받기 마련이다. 최근 출범한 ‘2022 대선 청년네트워크’의 외침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청년의 삶이 더 힘들어지는데, 근본적 해결책보다 선심성 공약을 내세운다”며 정치권에 쓴소리를 쏟아낸다. 어느 청년은 이렇게 울분을 토한다. “학력에 따라 값싼 노동력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무시가 만연한 사회에서 고졸 청년의 삶은 언제나 관심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계로 공고하게 다져진 학벌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병의 주요 뿌리다. 그것은 수도권 초집중화를 위시해 지역 불균형, 지방소멸, 교육을 통한 신분세습, 일자리 격차, 사회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 같은 대학서열화의 학벌 위계질서를 근원적으로 깨지 않고서는 청년 문제도 고질적인 지역 불균형도 해결하기가 어렵다. 블라인드 채용을 법제화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어느 대학 출신이든 고졸이든 대졸이든 인재를 차별없이 골고루 채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벌 피라미드 사회의 비극과 고통이 지속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편집국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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